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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도청 내용도 범법 의혹 짙다

입력 | 2002-12-01 18:25:00


한나라당이 2차 폭로한 도청 관련 자료에는 권력의 장막 뒤에서 여권 인사들간에 벌어지는 음습한 청탁과 거래에 관한 내용이 많이 들어 있다. 도청 자체도 중대한 불법 행위이지만 도청 자료에서 드러난 부당한 인사청탁과 수사 개입 등도 사실일 경우 그냥 넘어갈 사안이 아니다.

당시 청와대 박지원 특보가 이재신 민정수석비서관에게 “김대중 대통령이 이수동 전 아태재단 감사가 불구속 상태에서 조사받기를 희망한다”고 전하자 이 수석이 “차정일 특검과 접촉을 시도하고 있다”고 말했다는 내용도 그렇다. 통화 내용이 사실이라면 이는 청와대 비서실이 대통령 지시로 특검 수사에 개입하려 했음을 보여주는 중대한 증거이다. 여당 의원들이 대통령비서실장 수석비서관 또는 장관에게 지인을 공기업 임원으로 취직시켜 달라고 부탁하는 통화 내용은 사실일 경우 이 정부 들어 유난히 말이 많았던 공기업 인사 난맥상의 근원을 말해 주는 것이다.

전화받은 사람은 시인하는데 도청자료에 언급된 여당 의원이나 공직자는 그런 전화를 걸지 않았다고 한결같이 부인하고 있다. 그러나 어느 쪽이 진실인지 가리는 일은 어렵지 않다. 휴대전화든 유선전화든 통화기록 컴퓨터에 통화한 상대방과 시간이 초단위로 기록돼 있다. 통화 내용은 거짓으로 둘러댈 수 있어도 전화를 걸지 않았다는 주장의 진위는 금세 가려질 수 있다.

신건 국정원장은 사설업체의 도청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으나 그것이 사실이라면 더더욱 큰 일이다. 국가기관도 아닌 사설팀이 대통령수석비서관들과 국회의장 장관 국회의원들의 통화내용을 무작위로 도청했다면 국가안보에 큰 구멍이 뚫려 있는 것이다. 그런 일이 일어나도록 국정원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단 말인가.

검찰은 이 사건을 단순한 명예훼손 고소 사건으로 축소수사해서는 안 된다. 검찰은 정치공작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이번 사건을 철저히 수사해 전화 한 통화 마음놓고 걸지 못하는 도청의 공포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