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 혹시 치질이야?”
오늘도 변함 없이 회사 화장실에서 ‘항문에 힘쓰다’ 어기적어기적 걸어나온 최모씨(여·29). 동료의 농담에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며 “변비가 심해서…”라고 둘러댄다.
최씨가 치질을 앓은 것은 고3 때부터. 최씨는 변을 본 뒤 눈물을 머금고 치질 덩어리를 손으로 쑥 누르며 그렇게 10년 이상을 살아왔다. 병원에는 갈 생각도 안 했다. 왜? 창피하니까.
치질 때문에 고민하는 여성 대부분은 병을 숨긴다. 치질은 코미디의 단골 소재로 이용되는, 왠지 찜찜한 병으로 인식되기 때문. 그러나 치질은 위생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그저 항문의 질환일 뿐이다.
▽여성치질의 특징〓흔히 치질이라고 부르는 것은 엄밀히 말해 ‘치핵’이다. 치핵은 항문 밖으로 혈관이나 근육 덩어리가 삐져나온 것(탈항)을 말하는데 항문 안쪽 1.5∼2㎝의 치상선을 기준으로 위쪽에 생기면 내치핵, 아래쪽이면 외치핵이라고 한다.
여성에게는 주로 외치핵이 많다. 이는 변비와 임신, 출산의 영향이 크다.
여성은 무리한 다이어트로 식사량을 줄여 변비에 걸리는 경우가 많고 생리 전후 호르몬의 변화가 장운동에 영향을 줘 변비를 부르기도 한다. 변비가 있으면 화장실에 오래 있게 되고 힘을 더 주게 된다.
임신을 하면 항문의 조직이 연해져 쉽게 출혈이 생기고 붓는다. 특히 임신 말기에는 혈액 순환이 잘 안 돼 증상이 심해진다.
출산을 많이 할수록 치핵이 생길 확률도 높다.
대항병원 여성클리닉 이은정 과장은 “환자 중엔 첫 애를 낳을 때는 괜찮다가 둘째를 낳고 치핵이 생겼다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이 과장은 “만약 치핵이 아주 심하고 통증이 다른 방법으로 낫지 않으면 임신 3개월 이후에는 수술이 가능하다”며 “그러나 고생하지 않으려면 임신 전에 치료하는 게 좋다”고 강조했다.
▽치료〓심하지 않으면 일단 배변을 원활하게 하는 치료를 한다. 의사의 지시에 따라 변 완화제와 섬유질을 복용한다. 좌욕을 하는 것도 한 방법인데 35∼40도의 온수에 항문을 담그면 배변 뒤 불쾌감이나 항문출혈이 완화되고 부기도 가라앉는다. 한 번에 10분씩 3회 정도 하고 특히 수술 뒤에는 매일 해야 한다.
단계별로 나눴을 때(▶왼쪽 표 참조) 3도 이하는 약이나 수술이 아닌 치료를 하고 3도 이상이면 수술을 받는 게 낫다. 수술을 받으면 병원에 따라서 3∼7일 정도 입원이 필요하며 퇴원 뒤에도 안정을 취해야 한다.
■ 안 걸리려면? 10분이상 변기에 앉아있지 마세요
항문은 ‘예민한’ 부위. 평소에도 부드럽게 돌봐야 한다.
올바른 배변습관을 갖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한솔병원 이동근 원장은 “규칙적으로 화장실에 가고 한 번에 10분 이상 변기에 앉아 있지 말라”며 “변이 나오지 않으면 무리하게 힘을 주지 말고 좀 기다렸다가 다음에 보라”고 조언했다.
생활습관도 치핵에 영향을 준다. 좌변기가 아닌 재래식 화장실을 이용하거나 집안일을 하면서 오래 쭈그려 앉아 있는 습관은 치핵의 발생률을 높인다. 면 소재의 속옷을 입고 몸에 꼭 끼는 것은 피한다. 과음하거나 맵고 짠 음식을 먹는 것도 좋지 않다.
이은정 과장은 “항문은 몸의 컨디션을 따라간다”고 말했다. 스트레스가 심할 때만 치핵이 나온다는 사람도 많다.
채지영기자 yourcat@donga.com
■ 치질 재발이 많다던데…예전보다 낮아져 확률 5% 밖에 안돼
Q>치핵을 오래 놔두면 암이 되나요?
A>치핵이 몇십 년 있어도 암이 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간혹 직장암 환자가 치질 때문에 피가 나는 줄 알고 병을 방치하는 경우는 있다.
Q>치핵 수술을 해도 재발된다는데….
A>치핵을 제거한 부위에서 다시 혈관이 생겨 부어오르거나 다른 곳에서 치핵이 생기는 경우가 있다. 예전보다 재발 확률이 많이 낮아져 전체적으로 5% 정도다.
Q>치핵 수술이 매우 아프다는데….
A>다른 수술보다 조금 아플 수는 있다. 그러나 예전의 수술에 비해 통증이 많이 줄었다. 통증이 심한 환자는 전체의 20% 정도다.
Q>치핵 수술을 하면 항문이 좁아지나요?
A>수술시 의사가 조직을 과도하게 절제했을 때 좁아진다. 수술 뒤 식이섬유를 복용하면서 변을 굵게 보는 습관을 들이면 괜찮다.
Q>수술 뒤 변실금이 생기나요?
A>잘못해서 괄약근을 건드렸을 경우 그럴 수도 있다. 나이가 많은 사람은 괄약근이 약해 그런 경우가 가끔 있지만 젊은 사람은 거의 없다.
(도움말〓한솔병원 이동근 원장)
채지영기자 yourca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