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2월부터 6월까지 동아일보에 연재된 ‘2002 대기업 리더들’ 시리즈가 ‘한국대기업의 리더들’이라는 단행본으로 출간됐다는 소식을 11월 29일자 지면을 통해 전해드렸습니다.
700여명에 이르는 대기업 핵심임원들의 신상정보와 성공비화를 해당 기업의 인사스타일, 성장사(成長史), 최근 경영현안 등과 함께 담으려다 보니 어려움이 적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큰 어려움은 500여명의 얼굴사진을 구해서 싣는 일이었습니다. ‘나서지 않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는 기업문화가 여전히 남아 있어서인지 ‘얼굴 없는 CEO’가 의외로 많았습니다. 이 책에 등장할 정도면 모두 한국에서는 내로라 하는 대기업인데 회사에 CEO사진 한 장이 없다니 기막힐 일이었습니다.
또 사진이 있다 해도 상당수는 1950년대 중학교 앨범에나 있는 무표정한 표정이었고, 일부는 크기가 너무 작거나 해상도(解像度)가 낮아 출판물에 도저히 쓸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경영전문가들은 기업의 자산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의 하나로 브랜드를 꼽습니다. 요즘은 그 기업을 대표하는 CEO의 이미지도 그에 못지 않게 중시하는 추세입니다. 빌 게이츠 회장의 브랜드 가치가 마이크로소프트의 브랜드 가치 못지 않다고 보는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미국 백악관은 신문을 훑어볼 때 사진-사진설명-제목-기사의 순서로 본다고 합니다. 언론매체나 출판물에서 사진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알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두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CEO의 사진 한 장’이 기업의 마케팅에 끼치는 영향이 가볍지 않다는 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한국의 한 간장회사가 과거에 커피 신상품을 내놨다가 참패한 적이 있습니다. 소비자들이 그 회사의 커피를 볼 때마다 간장의 이미지를 떠올렸기 때문이겠죠.
소비자가 어떤 제품을 집으려다 무표정하고 흐릿한 CEO의 얼굴을 떠올리고 손길을 돌리는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있을까요.
천광암기자 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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