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집행위원회가 열리던 서울. 2006년 동계올림픽 개최지 선정을 앞두고 세계의 이목이 집중됐다. 낙점은 토리노(이탈리아). 분루를 삼켰던 개최후보지 임원 가운데는 91년 유고연방에서 독립한 슬로베니아 관계자도 있었다. ‘클라겐푸르트’(오스트리아)팀 일원이었다.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슬로베니아 세 나라 국경을 넘나드는 스키코스(다운 힐)가 있습니다. 1, 2차 세계대전 때 서로 총부리를 겨눴던 격전지를 통과하지요. 평화와 화합의 메시지를 담고 싶었는데….”
당시 이 말. 지난 주 그 현장을 본 후에야 의미를 알게 됐다. 당시 IOC 집행위원도 기자처럼 그 사연을 들었다면 클라겐푸르트에 표를 던지지 않았을까.》
슬로베니아의 서북쪽. 그곳은 온통 줄리안 알프스(Julian Alps·산맥)의 험준한 산악지역이다. 그 산자락의 작은 마을 크란스카 고라(Kranjska Gora). 거기 스키장에는 이런 팻말이 아직도 있다. ‘2006 클라겐푸르트 동계올림픽 스키장 건설지’. 탈락의 아쉬움이 얼마나 컸는지 헤아릴 수 있다. 클라겐푸르트는 산 너머다.
‘돔 플라니차’(Dom Planica)는 인근에 있었다. 월드컵스키 경기 때면 4, 5만 명이나 운집하는 계곡안 점프 경기장이다. 점프대 하단에 서있는 ‘225m’라고 쓴 팻말이 눈길을 끈다. 2년 전 오스트리아 선수가 예서 세운 세계기록 경신 기념물이다. 그 위쪽의 ‘110m’푯말 역시 같다. 스키명가 ‘엘란’(ELAN) 본사가 이 근처 블레드에 있다는 것까지 알고 나면 슬로베니아가 스키점프의 요람이자 강국이 된 이유는 굳이 듣지 않아도 알게 된다.
수도 류블랴나로부터 서북쪽으로 55㎞ 떨어진 블레드를 찾았다. 율리안 알프스 산악 한가운데 보석처럼 틀어박힌 호수 블레드가 있는 이 곳은 주민 4000여명 뿐인 작은 마을(해발 501m).
줄리안 알프스의 보석 블레드 호수. 호수 한가운데 섬의 하얀 성당이 호수와 어울려 빚어내는 풍경은 지상의 것을 넘어선다.조성하기자
호숫가에 섰다. 최고봉 트리글라브(Triglav·해발 2864m) 주변의 줄리안 알프스산맥이 병풍처럼 펼쳐졌다. 호수 한가운데 작은 섬이 있다. 그리고 섬에는 바로크양식의 종탑이 있는 성당이 있다. 결혼식 날. 신랑신부와 하객은 작은 배로 섬을 찾고 신랑은 신부를 안고 100개의 계단을 올라가 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린다.
호숫가를 장식한 것은 고색 창연한 별장과 성당. 티토 전 유고대통령의 여름집무실도 있었다. 호안 절벽 끄트머리에 아슬아슬하게 서있는 중세고성. 달빛 어린 수면과 고성이 어울려 빚어내는 한 밤 풍경은 압권이다. 성당 종소리까지 들리는 순간에는 더 말할 것도 없고.
블레드 호수 감상의 최고 적지는 호숫가의 그랜드호텔 토플리체다. 128년 전 자리 매김한 이 호텔의 매력은 두 가지. 호수풍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 좋은 바(Bar)와 섭씨 23도의 온천수가 담긴 그리스신전 풍의 스파 풀(실내). 2차 대전 중 침략군 독일은 이 호텔에 사령부를 차리고 이 바에서 승전보가 들려 올 때마다 축배를 들었단다. 티토 대통령 시절에는 외교관 정치인으로 꽉 찼단다. 방문객 가운데 유명인이 없을 리 없다. 비비안 리, 요르단의 후세인왕에 이어 찰스 황태자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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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레드 호수를 잉태한 율리안 알프스. 그 대부분은 트리글라브 국립공원에 들어있었다. 스키점프장 돔 플레니차를 떠나 자동차로 구절양장의 좁고 가파른 도로를 따라 국립공원의 산악을 올랐다. 아름답기만 한 이 산. 그러나 1차 대전 당시 100만 명의 사상자를 낸 최악의 소차계곡 전투가 벌어진 곳이었다.
고개 너머 찾아간 마을 코바리드. 그곳에는 이탈리아와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이 소차계곡에서 벌인 전쟁의 참상을 보여주는 전쟁기념관이 있었다. 거기서 찾은 두 가지 사실. 헤밍웨이에게 노벨 문학상을 수여한 소설 ‘무기여 잘 있거라’의 무대가 바로 여기고 2차 대전 당시 나치군의 전술인 ‘전격전’(Blitzkrieg)이 1차 대전 당시 약관 28세의 독일군 중위로 이 전투에 참가한 청년 롬멜에 의해 바로 이 곳 소차 계곡에서 고안돼 그 위력이 실증됐다는 사실이다.
코바리드의 전쟁기념관에 전시된 헤밍웨이의 사진과 방명록.
소설은 당시 이탈리아 측에 의용군으로 참전, 적십자병원의 운전병으로 근무하던 헤밍웨이가 부상으로 스위스 병원에 후송됐다가 간호사와 이룰 수 없는 사랑에 빠진 그 자신의 이야기를 옮긴 자전적 작품. 한편 롬멜 중위는 소차 계곡으로 우회, 능선의 이탈리아 군 배후를 공격해 사흘만에 전세를 뒤엎는 전과를 올렸고 훗날 2차 대전 때 이 전법으로 연합군을 파죽지세로 몰아붙여 ‘사막의 여우’라는 별명을 얻으며 나치 군의 원수까지 오른다.
블레드(슬로베니아)〓조성하기자 summer@donga.com
전통의상 차림의 슬로베니아 농민. 사진제공 슬로베니아 관광청
● 여행정보
◇슬로베니아 ①관광청〓www.slovenia-tourism.si ②트리글라브 국립공원〓www.sigov.si/tnp
◇블레드(전화번호는 현지) ①관광청〓www.bled.si 578-0500 ②그랜드호텔 토플리체〓www.hotel-toplice.com ③Bled Castle(고성)〓578-0525 ④Fijaker(호숫가마차)〓041-71-0970 ⑤Pletna(호수보트)〓031-31-6575 ⑥인터넷카페〓574-3424 ⑦스키장(블레드 인근)〓△크르바벡www.rtc-krvavec.si△크란스카고라 www.kranjska-gora.si ⑧현지여행사〓△콤파스블레드 www.kompas-bled.si △알페투어 www.alpetour.si ⑨열차 역〓①Lake Bled 574-1113 ②Lesce-Bled 294-4154
◇코바리드〓전쟁기념관 www.kobariski-muzej.si
◇국제공항〓Brtnik(브르트닉)〓206-1229. 블레드에서 35㎞, 버스로 40분 소요.
◇알아 둘 것 ①통화〓유로와 자국 화폐 톨라(Tolar·단위 SIT) 병행. 1 유로는 약 250 SIT ②팁〓미국처럼 ‘반드시’는 아님. 보통 5∼10%, 침대에는 1유로 정도. ③전압〓220V ④언어〓영어가 제2외국어여서 거의 대부분 통한다. ⑤기온(평균)〓7월 19도, 1월 영하 1.7도 ⑥시차〓독일과 동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