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엔저(低)’를 용인하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를 적극 유도하는 쪽으로 옮아갈 것이라는 전망이 급속도로 힘을 얻고 있다. 최근엔 시오카와 마사주로(鹽川正十郞) 재무상 등 정부 관계자들까지도 엔저를 유도하는 듯한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이로 인해 4일 도쿄외환시장에선 엔화가치가 한때 달러당 125엔대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150엔대 적당”〓도쿄(東京)시장에서는 ‘엔저 유도론’이 확산되면서 엔화가치가 2일부터 사흘 동안 달러당 무려 2.3엔이나 떨어졌다. 4일 오후 5시 현재 달러당 124.74엔.
직접적인 요인은 시오카와 재무상이 1일 강연회에서 “세계 수준에서 볼 때 달러당 150∼160엔 사이가 적당할 것”이라고 말한 것. 구로타 하루히코(黑田東彦) 재무관 등도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2일자) 기고문에서 “일본은행 내에는 재무성이 추가금융 완화책을 요구해 결과적으로 엔저로 이끌고 싶어 한다는 견해가 있다”고 밝혔다.
일본 정부 관계자들의 이런 발언은 결국 일본 경제의 실력에 비춰볼 때 엔화가치가 너무 높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실제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지난해 미국과 일본의 구매력평가에서 ‘1달러〓150엔’이 적당하다고 시산했으며 모건스탠리증권도 10월 ‘1달러〓165엔 선’이라는 계산을 발표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일본이 1985년 ‘엔고-저달러’ 유도 정책을 채택한 이후 급속도로 경쟁력이 떨어졌다는 자성이 일고 있다.
▽주변국들의 반발〓일본은 이미 지난해 말부터 엔저를 용인, 1월 말을 전후해 엔화가치가 135엔 가까이로 떨어졌다. 그러나 미국 경제의 침체로 달러화도 약세를 보여 엔화가치가 지난달 119엔까지 다시 회복했다.
일본이 엔저 유도정책을 펴려는 것은 심각한 디플레이션을 해소하고 수출 증대로 활로를 뚫어보겠다는 의도에서다. BNP파리바증권은 엔화 가치 10% 하락시 수출은 1% 늘고 소비자물가는 0.3% 올라 실질국내총생산(GDP)이 0.4% 늘어난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한국 등 일본의 수출 경쟁국들로서는 엔화 가치가 150엔대로 떨어질 경우 타격이 심대하다. 올해 적정환율을 125엔 내외로 잡아온 아시아 수출기업들은 일본의 엔저 유도가 ‘근린(近隣) 궁핍화 정책’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도쿄〓이영이특파원 yes202@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