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즈넉한 분위기도 ‘짱’이지만 산장지기의 구수한 입담에 더 빠져드는 곳이랍니다”
소담스럽게 내린 눈이 지붕을 덮고 산천을 덮은 모습이 오히려 포근하게 느껴지는 한적한 겨울 산장. 생각만 해도 운치가 있다. 2002년 한해를 정신없이 바쁘게 살아왔다면 올해가 가기 전에 한번쯤 고즈넉한 겨울산장을 찾아 차분하게 마음을 가라앉혀 보는 것은 어떨까?
봄에는 흐드러지게 핀 꽃이요, 여름엔 시원스럽게 흐르는 계곡물, 가을엔 마치 산불이라도 난양 울긋불긋하게 물든 단풍, 겨울엔 소담스러운 눈으로 뒤덮인 산….
예나 지금이나 달력을 넘기다 보면 계절의 특성을 고스란히 담은 풍경들이 한폭의 수채화처럼 나타난다. 어떻게 보면 상투적이고 약간은 촌스러워 보이는 모습(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겠지만)… 하지만 그 풍경은 어딘가 모르게 아련한 향수를 불러일으키곤 한다.
2002년도 끝자락에 와 있는 12월이라… 이번엔 어디로 여행을 떠나야 각박한 세상살이에 조금이나마 ‘피가 되고 살이 될까’ 싶어 인터넷을 뒤지기 시작했다. 후보 물망에 오른 곳이 몇 군데 있었지만 그 가운데 속칭 ‘필’이 꽂히는 곳이 운두령산장이었다. 인적이 드물어 원시의 자연과 산속의 정취가 물씬 배어나온다는 운두령. 그 고개를 넘어가는 길목에 달력에 나옴직한 그림 같은 겨울 풍경을 고스란히 간직한, 강원도 산골의 아담한 산장이 눈에 쏙 들어왔다.
밤마다 모닥불 피워놓고 바비큐 파티 여는 산장
그러나 더욱 구미가 당겼던 건 산장을 운영하는 ‘산장지기’ 권대선씨(사람들은 그를 산속의 두목이라 하여 ‘두령’이라고 부른다)의 풋풋한 ‘철학’ 때문이다. 권두령은 산장 손님들을 방에 그냥 놔두질 않는다는 것. 저녁이 되면 비가 오나(비오는 날은 양철 지붕 밑에서 한다고) 눈이 오나 사시사철 마당에 모닥불을 피워놓고 손님들이 함께 어우러져 지글지글 고기를 구워 먹으며(물론 여기에 술도 한잔 곁들이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소중한 만남의 시간을 갖게 하는 것이 산장의 운영 방침이라니 한해를 돌아보면서 그 나름대로 의미있는 체험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산장을 찾아가는 길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영동고속도로 속사 인터체인지를 빠져나와 운두령으로 향하는 인제 방향(31번 국도)으로 10여분 정도 달리니 길 왼편에 앙증맞은 모양의 나무판에 ‘운두령산장’이라는, 동글동글한 글자가 오밀조밀하게 씌어있는 간판이 쉽게 눈에 띄였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고속도로를 나와 국도로 접어든 이후 산장에 도착할 때까지 기자가 운전하는 차량 앞뒤로 다른 차는 단 한대도 없었으니 과연 인적이 드물긴 드문 곳이지 싶다.
고즈넉한 분위기에서 밤늦도록 바비큐 파티를 벌이며 겨울밤을 즐기던 산장손님들.
초기에는 그도 손님들에게 자신이 패놓은 장작을 그냥 내주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온 천지에 나무네’ 하면서 흔하다는 생각에 마구 갖다 쓰더라는 것. 자신은 그걸 만들기 위해 하루종일 땀을 흘렸건만 남이 애쓴 건 생각도 안하고 아무렇게나 갖다 쓰는 것을 보고 ‘이건 아니다’ 싶었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돈으로 따질 수 없는 노력을 스스로 체험하도록 마음을 바꿨다고 한다.
그때부턴 사람들도 자신이 직접 나무를 해오는 수고를 체험하면서 불을 지필 때 하나라도 아끼고 소중하게 여기는 모습을 보면서 지금까지 그 원칙을 고수하고 있는 것. 처음엔 야박하다고 생각했던 사람들도 권두령의 이런 ‘깊은 뜻’을 알고 나선 또 한번 고개를 끄덕인다고 한다.
모닥불이 서서히 잦아들 즈음 권두령을 통해 자연의 소중함과 사람간의 따뜻한 정을 체감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이곳에 와서 보니 단순히 쉬다 가는 거라기보다 마음을 열고 가는 것 같아 기분 좋다”는 말과 함께 아쉬움을 남기며 저마다의 숙소로 돌아갔다.
운두령 산장의 객실은 달랑 4개뿐(12~15평 크기로 복층 구조, 이용료는 주중 8만원, 주말 10만원)이기 때문에 산장의 모든 손님이 다 모인다 해도 가족적인 분위기를 느끼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방이 적은 만큼 사전에 예약(033-332-7481)을 해야 한다. 예약을 해놓고 ‘펑크’내는 사람들이 많아 예약금은 전액 입금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아울러 산장 주변에는 장을 볼 만한 곳이 없어 먹을거리는 미리 준비해 와야 한다.
이곳에 오면 산장의 훈훈함과 함께 계절별로 자연이 바로 내 코끝에 와 있다는 것을 바로 느끼게 된다. 겨울에는 코끝으로 찬 바람이 스치고, 발 밑에 눈이 있고, 앙상한 가지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드러내고, 봄이면 꽃향기가 날리고, 여름에는 시원한 바람이 스치고, 가을에는 단풍이 코 앞에서 나풀거리고…. 이렇듯 거짓 없는 자연만큼이나 맑고 순수한 산장지기의 마음이 어려 있는 운두령산장에서의 하룻밤 체험, 짧은 일정이지만 그야말로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값진 여행이었다.凍
■ 글&사진·최미선 기자(tiger@donga.com)
운두령산장 주변의 가볼 만한 곳
방아다리약수 국내에 현존하는 약수 중에 가장 뛰어나다는 평을 듣고 있는 탄산 철분 약수로 울창한 전나무숲속 샘터에서 용출된다. 산장에서 약 10km 거리.
삼봉약수 운두령 넘어 구룔령 가는 길에 있는 삼봉자연휴양림 안에 있으며 세 구멍의 샘에서 서로 다른 물맛의 약수가 솟는다 하여 삼봉약수로 불린다. 산장에서 약 35km 거리.
오대산 국립공원 상원사와 월정사, 적멸보궁 등 불교 문화재와 비로봉 및 노인봉, 소금강 등 등산로가 잘 개발되어 있고 남한강 발원지의 하나인 우통수가 있다. 상원사에는 조선시대 세조의 유품이 전시되어 있다. 산장에서 30~40분 거리.
가리왕산 산나물과 야생화가 지천이라 등산객들도 많이 찾지만 총연장 임도 길이가 200km나 되어 산악자전거 마니아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산장에서 30분 거리.
이외에도 겨울 손님이 유난히 많은 용평리조트와 휘닉스파크 등도 산장에서 30분 거리 내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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