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들은 지나갔다. 날들이 아니라, 우리가 지나온 것이다. 둘이서 손을 맞잡고. 아니, 이제 둘이 아니다. 인혜의 태내에는 내 아이가 있다. 가을이 되면 나는 아내와 아이의 배웅을 받으면서 집을 나선다. 아내와 아이는 내가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집으로 돌아오면 아내와 아이가 나를 맞아준다. 앞으로 계속, 나나 인혜 중 어느 쪽이 죽을 때까지 계속이다. 나는 한 켤레에 50전 하는 고무신을 팔아 처자식을 먹여 살려야 한다. 우철은 자기 안에서 행복이란 단어가 미끄러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행복은 내게 무엇을 가져다줄까. 행복의 무게를 감당할 수 없게 되면? 그래도 나는 행복을 한없이 짊어지고 있어야 하는 걸까?
인혜가 눈을 떴다. 그리고 빙그레 미소지었다. 우철은 아내의 촉촉한 눈길과 미소짓는 입가를 아주 가까이서 보았다. 인혜가 눈을 감았다. 우철이 손가락으로 눈꺼풀을 살짝 누르자, 눈을 뜬 인혜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번졌다. 둘은 더 이상 가까울 수 없을 정도로 얼굴을 맞대고 미소를 나눴다. 인혜는 자기 얼굴을 보면서 미소짓는 남편의 얼굴을 기억에 담고 싶었지만, 너무 가까워 두 눈밖에 보이지 않았다. 눈으로 눈을 삼킨 것처럼 눈이 눈으로 가득해져….
둘이서 맞이한 첫 아침이었다. 둘은 아침의 고요함을 나누기 위해서 다시 한번 눈을 감고 소리 없이 누웠다.
“아 참, 곰이나 큰곰 꿈 안 꿨어예?”
“뭐?”
“곰이나 큰곰이면 아들이고, 뱀이나 살무사면 딸이라고 하던데”
“아아, 태몽 말이가. 태몽은 보통 엄마가 꾸는 거 아니가?”
“아버지가 꿀 수도 있답니다. 안 꿨어예? 나 만나고부터”
“…글쎄, 꿨을지도 모르겠지만, 생각이 안 나네. 아버지한테 들은 적이 있는데, 영웅이 태어날 때는 태양이나 별이 입으로 들어오는 태몽을 꾼다고 그카든데”
“나도 책에서 읽은 적이 있어예. 장화하고 홍련의 어머니는 선녀한테서 꽃을 받는 꿈을 꿨다고 하고, 태조 이성계의 어머니는 용이 하늘에서 내려와 자기 배로 들어오는 꿈을 꿨다 캅디다. 어젯밤 무슨 꿈 안 꿨어예?”
“생각이 안 난다. 아주 좋은 꿈이었는데, 첫닭 울음소리에 잠이 깼는데…아, 조금은 생각이 날 것도 같다…누가 나왔었는데…”
글 유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