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는 한 도시의 얼굴이자 상징이다. 문화적 생명력이 넘치고 잠재력이 풍부할 때 그 도시는 그만큼 아름답고 역동적이고 쾌적한 도시가 된다. 워싱턴 뉴욕 파리 런던 등 세계 주요 도시의 중심 축에는 예외 없이 문화가 자리잡고 있다.
여행자는 도시의 문화적 체험을 통해 그 도시를 보다 인상깊게 기억하고 다시 찾는다. 뉴욕시의 경우, 문화 예술과 관광 분야가 재정의 25% 이상을 벌어들여 적자재정에 허덕이는 이 거대 도시의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런던의 사우스뱅크 문화 지구에 화력발전소를 개조해 2000년 개관한 테이트모던 갤러리는 런던의 얼굴은 물론, 영국의 국가 이미지를 크게 바꾸어 놓았다. 또한 뉴욕 파리로 대변되던 현대미술의 중심 축을 런던으로 이동시키는 큰 변화를 가져왔다.
스페인의 빌바오, 미국의 아스펜 등 폐허와 다름없던 폐광도시들에 구겐하임 미술관이 들어서고 아스펜 음악제가 열리면서 세계적인 문화 관광의 도시로 주목받고 있다. 문화는 이제 단순한 예술적 문화적 상징을 넘어 무엇보다 도시 경쟁력의 중요한 원천이 되고 있다.
지금 시민 1000만명이 넘는 이 거대한 공룡 도시 서울은 천혜의 입지조건과 풍부한 문화유산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덩치만 비대한 채 몸살을 앓고 있다. 이 엄청난 도시에 제대로 된 미술관 하나 없다는 것은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필자는 일거에 서울의 얼굴을, 서울의 문화지도를 바꿀 수 있는 방안의 하나로 서울의 심장부인 현 청와대 건물을 미술관으로 사용할 것을 제안한다. 많은 나라에서 왕궁이나 대통령궁을 대부분 미술관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고, 마침 유력한 차기 대통령 후보들이 집권하면 청와대를 떠나겠다고 공약하고 있다. 이 기회에 청와대를 인구 1000만의 도시 서울에 어울리는 세계적인 미술관으로 거듭나게 한다면 문화와 관광의 시너지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청와대가 미술관으로 그 면모를 일신했을 때 서울의 상징 가로인 세종로를 중심으로 한 명실상부한 광화문 문화벨트는 완성될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광화문 문화 특구는 세계적인 자랑거리가 될 것이며, 시민에게는 가장 사랑 받는 문화공간이자 문화의 거리가 될 것이다.
한 발 더 나아가 세운상가를 허물어 녹지공간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과감히 리노베이션해 주위 환경을 일신하고 넓은 옥상을 녹지와 조각공원으로 만드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이렇게 하면 청계천 복원과 더불어 서울은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빠지지 않는 아름다운 문화도시가 될 것이다.
아울러 오만하리만큼 권위적인 국회의사당이나 대법원을 개방해 그 넓은 잔디밭을 시민의 품으로 돌려주고, 조만간 이전할 서울 서초동 정보사 터를 문화공간으로 조성하는 한편 남산-국립극장-장충단공원을 잇는 장충문화벨트까지 다듬어간다면 서울은 그야말로 살기 좋은 도시, 문화가 숨쉬는 도시, 꿈이 있는 도시로 거듭날 것이다.
새 대통령의 결단을 기대한다.
최진용 예술원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