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라 그런지 매일 같이 책상 위에 수북하게 쌓인 우편물을 뜯어보는 것도 일입니다. 어제도 우편물 정리를 하고 있는데 노란 봉투 안에서 시집 한 권이 툭 떨어지더군요. 한 지인이 연말 카드 대신 자신이 좋아하는 시집을 보낸다는 짧은 메모를 곁들였더군요. 첫 장을 펼치는데 이동순 시인의 말이 눈길을 잡아챘습니다.
“차고 비정한 디지털 세상에서 시가 무슨 힘이 될 수 있으랴. 다만 아름다움을 잊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나의 시가 분주히 다니면서 그들의 쓸쓸한 가슴 한 귀퉁이를 따스하게 데워주는 아랫목 온돌이 되었으면 좋겠다.”
최근 인터넷 교보문고에서 설문조사를 실시했는데, 예상보다 많은 분들(76.1%)이 책선물을 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더군요. 이맘때 내 마음을 적시는 시집이나 책을 골라 선물한다면, 연말의 어수선함 속에서도 한 해를 차분히 마무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분들을 생각하면서 이번 주에는 뜨거운 열정으로 자신의 길을 지켜온 국내 저자들의 내공이 느껴지는 책들을 골라보았습니다. ‘현산어보를 찾아서’(1면)는 세화고 생물 담당 이태원 선생님이 7년간의 답사와 연구 끝에 내놓은 책입니다. 이제는 잊혀진 유산처럼 되어버린 정약전의 저서에 나온 생물들의 정체를 직접 발로 뛰어 밝혀내고, 방대한 자료들을 샅샅이 뒤져가며 땀으로 써내려간 책입니다.
‘시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풍경에 대한 추억’이라고 말하는 허만하 시인은 57년 등단해 이제야 세 번째 시집 ‘물은 목마름 쪽으로 흐른다’(7면)를 펴냈습니다. 시류에 영합하지 않고 의연하게 독자적인 시세계를 지켜온 그의 작품은 시쓰기의 어려움과 진실함이 어떠해야 하는지 일깨워줍니다.
류시화씨의 ‘지구별 여행자’(6면)는 주변에 많은 것을 빚졌으면서도 언제나 그것을 잊어버리기 일쑤인 사람들, 그래서 무엇을 빚졌는지조차 잊고 살아온 사람들을 위한 책입니다. 인도 여행길에서 만난 사람들의 목소리를 빌려 저자는 삶은 결코 일회적인 것이 아니며, 이 생의 일은 반드시 다음 생의 결과로 이어진다고 나지막히 들려줍니다. 내가 행한 일은 언젠가는 반드시 내게로 돌아온다고….
고미석기자·출판팀장 mskoh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