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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보기 세상읽기]책속의 정보 내것으로 만드는 요령

입력 | 2002-12-06 17:35:00

안대회


나는 인문학을 공부하는 사람이라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이 생활이다. 그러다 보니 옛사람들로부터 시작해서 당대의 독서인(讀書人)이 하는 말에 대해서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

다치바나 다카시의 ‘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는 그런 점에서 정말 흥미롭게 읽은 책이었다. 그 책에서 관심을 끈 내용은 ‘실전에 필요한 14가지 독서법’이었다. ‘같은 테마의 책을 여러 권 찾아 읽어라’ ‘책을 읽는 도중에 메모하지 말라’ ‘책을 읽을 때는 끊임없이 의심하라’ ‘새로운 정보는 꼼꼼히 체크하라’ ‘대학에서 얻은 지식은 대단한 것이 아니다. 여하튼 젊을 때 많이 읽어라’ 등등 책을 대하고 지식을 섭취하는 그 특유의 자세와 방법은 내 자신의 경우를 되돌아보게 만들었다. 기존에 보아왔던 교과서적 독서법과는 다른 접근을 하고 있어 무뎌진 자신을 일깨웠다.

근래에 내 눈길을 끈 독서법이 또 하나 있었다. 800년 전 금(金)나라의 문인인 원호문(元好問·1190∼1257)이 제시한 것으로, 그는 고려 중엽에 해당하는 시기의 작가다. 그의 독서법은 ‘시문자경(詩文自警)’이란 저서에 수록된 ‘독서십법(讀書十法)’으로 요약되어 있다. 그 저서는 전하지 않지만 다행히 조선시대 간행된 ‘문단(文斷)’이란 책에 내용의 일부가 전해지고 있다. 그 내용을 대충 정리하면 이렇다.

첫 번째가 기사(記事)로 자기에게 필요한 중요한 사건의 대강을 기록해둔다. 두 번째가 찬언(纂言)으로 마음에 드는 글이 있으면 따로 기록해둔다. 세 번째가 음의(音義)로 알기 어려운 단어를 분류해 써 놓는다. 네 번째가 문필(文筆)로 외워두면 좋을 문장을 따로 기록해둔다. 다섯 번째는 범례(凡例)로 옛 작가가 쓴 독특한 문투를 사례별로 기록해둔다.

여섯 번째는 제서관섭인용(諸書關涉引用)으로 많은 작품들의 상관관계를 따져보고 그 본문을 적어 둔다. 일곱 번째는 취칙(取則)으로 인생과 사회생활에 쓸모 있을 옛사람의 행위 가운데 본받고 싶은 것을 따로 기록해둔다. 여덟 번째는 시재(詩材)로 시를 쓸 때 이용할 고사나 말을 분류하여 기록해둔다. 아홉 번째는 지론(持論)으로 선배의 주장과 논리에 불만스러운 것이 있으면 자신의 견해를 첨가해둔다. 열 번째는 궐문(闕文)으로 내가 모르는 단어나 옛일 등을 모두 따로 기록해둔다.

‘시문자경’에 들어가 있는 독서법이니 시와 문장을 전문적으로 쓰는 작가의 창작지침을 위한 독서방법이라고 해야 할 것인데 800년 전의 낡은 방법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문단’을 읽다가 이 내용을 접하고서 하나하나 음미해 보았다. 다양한 독서체험과 창작경험이 없었다면 이런 독서법은 나올 수가 없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원호문의 독서법은 분명 작가를 지망하거나 저술을 목표로 하는 사람에게는 매우 친절하고 구체성을 띤 것이다.

특별하게도 그의 독서법은 하나같이 기록해두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저 책을 읽고 던져두지 않고, 그것을 하나의 정보로 간주하여 메모하라고 한다. 일회성 독서나 부스러기 지식의 축적에 머물지 말고 읽은 책의 내용을 제것으로 만들자는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독서를 통해서 많은 지식을 얻고, 또 그 지식을 체계화하려고 한다면 그런 독서법은 정말 유용한 것이 아닐까? 포괄적이요 추상적이란 느낌을 주는 보통의 독서법과는 달리 허황하지 않고 실용적인 독서법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 점에서 다카시의 독서법과 은연중 비교가 되었다.

독서법의 차이는 바로 학문의 차이를 낳는다. 원호문이 사료의 빈곤을 딛고 홀로 금(金)의 역사를 엮고, 해괴한 전설을 모은 ‘속이견지(續夷堅志)’를 편찬한 바탕에는 이런 독서법의 영향도 없지 않다고 하겠다. 얼마 전에 나는 손에 들어오는, 작지만 약간 두터운 공책을 두 권 마련했다. 독서10법 가운데 찬언과 문필과 취칙을 흉내내고 싶어서다. 얼마나 지속될지는 알 수 없다.안대회 영남대교수 한문교육과 ahnhoi@yumail.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