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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철의 경영과 인생]창조경영의 조건

입력 | 2002-12-08 17:44:00


어둠을 밝히는 등불은 1870년대까지도 촛불이나 가스등이 고작이었고, 이들 불빛은 조도(照度)가 낮아 밤일 하는 사람들 눈을 아프게 했으며 바람이 불면 쉽게 꺼졌다. 이러한 아픔과 불편에 대한 감수성이 토머스 에디슨을 자극, ‘만약 전류의 양극(兩極) 사이에 연결되면 밝은 빛을 내는 물질이 있을지 몰라!’ 하는 상상력을 낳았고, 이런 물질을 찾기 위한 끈질긴 노력 끝에 1879년 백열등이 발명되었다. 백열등처럼 아직 세상에 존재하지 않던 것을 처음 만들어내는 일을 우리는 ‘창조’라고 부른다. 베토벤의 음악, 피카소의 그림 같은 예술작품이 창조적 노력의 산물이고, 기업경영과 인생살이도 창조의 한 과정이다. 남녀간의 사랑에도 창조를 지향하는 노력이 결여되면 단조로움에 대한 권태가 올 것이다.

인간의 창조성을 분석한다는 것은 창조에 대한 모독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창조성에는 그만큼 신비로운 요소가 많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모든 창조과정에는 상상력의 역할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다음 케이스를 살펴보자.

#바르셀로나의 불화살

올림픽경기 개회식에서 가장 중요한 행사의 하나는 성화 점화일 것이다. 그래서 올림픽조직위는 좀더 감동적인 방법으로 성화를 점화시키려고 부심한다. 층층계나 승강기를 타고 오르는 방법은 그동안 많이 보아 왔기 때문에 관객들에게 진부한 느낌을 준다는 생각이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조직위의 감수성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참신한 ‘신제품’을 개발하기로 했고, 그 결과 나타난 것이 불화살에 의한 성화점화였다. 연료(가스)가 분출되는 성화대 위로 불화살을 쏘아 올려 점화시키는 방식이었다. 이 방식은 올림픽 경기장은 물론 TV를 지켜본 전 세계 관중들로부터 참신하고 스릴 있었다는 찬사를 받았다.

여기서 한국 국민은 생각해 볼 것이 있다. 만약 불화살 점화를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했다면, 우리가 양궁왕국임을 과시하면서 우리 기업의 정밀조립제품을 선전하는 효과도 있었을 것이다. 정밀조립제품은 말초신경의 안정성을 요하고 그것은 활을 잘 쏘는 조건도 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서울올림픽에서 불화살 점화를 못한 이유는 무엇인가? 답변은 간단하다. 우리가 그것을 상상해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상상력’의 중요성이 있다. 그래서 이성(理性)과 판단력 비판의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는 인간의 지적(知的)능력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상상력이라고 말했다.

#과학 기술 분야에서의 상상력

상상력은 과학과 기술 발전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라듐을 발견한 퀴리(Curie) 부부 케이스를 들어보자. 퀴리 부부는 피치블랜드(pitchbland) 광석으로부터 라듐을 분리해 내기 위해 5677 단계의 농축과정을 거쳐서 얻어낸 용액에서 라듐 결정(結晶)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액체가 다 증발한 후에도 그릇 속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4년간의 노력이 허사로 끝났다는 절망감 속에 퀴리 부부는 그날 밤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언뜻 머리 속에 “만약 라듐의 양이 아주 적다면 그릇 밑바닥에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그것이 깔려 있을지 몰라” 하는 상상이 머리릿 속을 스쳤다. 퀴리 부부는 얼른 실험실로 달려갔고 한밤의 어둠 속 빈 그릇 밑바닥으로부터 라듐이 푸른 불꽃을 내고 있었다. 상상력 발휘가 아니었다면 라듐 발견을 놓칠 뻔했다.

모든 창조과정에서 상상력은 이처럼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저임금에 의한 코스트 경쟁 시대는 끝났고, 상상력 발휘에 의한 창조경영만이 살아남는 시대가 되었다. 더 싸고 질 좋은 제품, 더 경제적이고 친환경적인 생산기술, 더 인간적이고 우리 문화에 맞는 작업방식, 이 모두가 창조경영이 개발해야 할 대상이다. 우리민족은 과거 사대주의적 선입견과 주변 강대국의 지배, 그리고 독재정권 하에서 자유로운 상상력 발휘를 저지당해 왔다. 이제 민주화 자유화도 충분히 진전되었으니 자유분방한 상상력을 높이 평가하는 문화를 배양, 창조경영에 임해야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 yoonsc@plaza.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