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과 민주당이 미군 장갑차 여중생 치사사건으로 불거진 반미 정서를 코앞에 다가온 대선에서 어떻게 표로 연결시킬지에 대한 대책마련에 골몰하고 있다. 그러나잘못하면 ‘역풍(逆風)’을 불러 올 수 있는 인화성높은 사안이란 점 때문에 양당 모두 수위조절에 고심 중이다.
▽한나라당〓정부의 미온적 대응을 강하게 질타하는 동시에 미국에도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의 조속한 개정을 촉구하는 등 당분간 공격적인 자세를 견지한다는 방침이다. 20, 30대 연령층을 중심으로 급속히 확산 중인 반미 여론이 적어도 투표일까지는 수그러들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이회창(李會昌) 후보가 첫 합동토론에서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의 직접 사과 및 즉각적인 SOFA 개정’을 촉구함으로써 이슈 선점에 성공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 후보가 국회 차원의 SOFA개정 결의안 채택을 주문하고, 토머스 허버드 주한 미 대사를 만나 SOFA의 불평등성을 강조하며 즉각적인 개정을 요구한 것도 이슈를 계속 장악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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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함께 10일경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를 소집해 정부의 저자세를 추궁하는 등 ‘김대중(金大中) 정권 책임론’을 적극 공론화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 후보는 지나친 여론 편승 전략이 역효과를 불러올 수도 있을 것으로 보고 고심 중이다. 그가 7일 외신기자간담회에서 ‘여중생 치사사건 및 SOFA 문제와 반미 감정의 구분’을 강조한 것이나, 서울 광화문 일대 촛불시위에 불참한 것도 그런 고민이 반영된 것이다.
▽민주당〓국민 정서에 부응하기 위해 속시원한 해답을 내놓아야 하지만, 자칫했다간 반미정서에 편승한다는 역공을 받을 가능성이 있어 신중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노무현(盧武鉉) 후보가 부시 대통령의 직접 사과와 SOFA 개정을 강력히 요구하고 정부의 미온적 대처를 강하게 비판하면서도 정제된 표현과 절제된 행동을 견지하고 있는 것이나 7일 효순·미선양 추모 촛불시위에 가지 않은 것도 그런 맥락이다.
그러면서도 내심 현재의 기류가 대선에 부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고는 보지 않고 있다. 평소 ‘수평적 대미관계’를 강조해 온 노 후보로서는 보수 성향의 이 후보와의 차별화를 꾀할 수 있는 재료가 될 수 있기 때문.
다만 선대위 관계자는 “지나친 반미 정서로 흐를 경우 국민의 안정심리를 자극해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고 걱정했다.
이낙연(李洛淵) 대변인은 이와 관련해 “부시 대통령의 직접 사과와 SOFA 개정 등 대등한 한미관계를 수립하겠다는 것이 노 후보의 생각이며 반미나 미군 철수는 반대한다는 점을 분명히 해둔다”고 말했다.
정용관기자 yongari@donga.com
이종훈기자 taylor5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