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제22회 모스크바 올림픽은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항의해 미국 중국 서독 일본 등 36개국이 불참하는 바람에 반쪽 올림픽이 됐다. 얼마 전 열렸던 제1회 MBC 영화상 시상식을 보면서 갑자기 모스크바 올림픽이 떠올랐다.
우선 감독상 작품상 남우주연상에서 강력한 후보로 거론된 영화 ‘취화선‘이 출품을 거부하는 바람에 별다른 경합없이 ‘오아시스’가 6개 부문을 휩쓸었다. 이창동 감독은 감독상과 각본상을, 여배우 문소리는 여우주연상과 신인여우상을 동시에 수상해 2관왕에 올랐다.
영화 ‘오아시스’는 평론가들의 극찬을 받았고 해외에서도 호평을 받은 훌륭한 작품이다.
하지만 7개 부문의 후보에 올라 6개 부문을 수상한 ‘오아시스’의 쾌거가 기왕이면 진정한 영화인들의 잔치에서였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대종상이 갖고 있던 영화계의 정통성이 흐려진 현실에서 MBC 영화상이 자격이 없는 것은 아니다. 어떻게 드라마를 만드는 일개 방송사에서 영화상을 줄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이는 우문이다. 문제는 영화인들이 시상식의 ‘주체’가 되느냐 하는 것이다.
MBC 영화상에는 설경구 유오성 등 일부 스타들도 보였지만 대중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영화배우 상당수가 보이지 않았다. 후보에 오르지 않아서가 아니라 아예 관심이 없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조만간 열릴 청룡상 시상식에는 ‘취화선’은 출품됐고 ‘오아시스’는 출품되지 않았다. 그럼 이번엔 ‘취화선’이 싹쓸이를 할 차례인가? 물론 이제는 상이 공정해져 영화사들끼리 담합으로 나눠 먹기를 할 수도 없지만 그 해에 나온 영화가 모두 모여 선의의 경쟁을 벌이는 진정한 의미의 영화제가 그리워진다.
예전의 영화상은 1년을 마무리하는 영화계의 축제였고 파티였다. 수상 여부나 후보에 관계없이 모든 배우와 영화 관계자들이 모여 수상자들을 축하했고 중계 방송을 통해 스타들이 담소하는 모습을 보며 시청자들은 흥미로워했다. 그러나 이젠 그런 모습을 보기가 쉽지 않을 듯 하다.
할리우드에서 열리는 아카데미 시상식에는 대부분의 배우들이 참석한다. 시상식 자체가 1년에 한 번 뿐인 초호화 캐스팅의 쇼 프로그램이 되고 그들 스스로 시상식을 즐긴다.
그런데 왜 우리는 그렇지 못할까? 영화상이 너무 많아서일까? 대종상, 청룡상, 영평상, 백상예술대상, 춘사 나운규상에 이젠 MBC 영화상까지.
이 중 단 하나만 남고 나머진 다 없어진다면 아마도 모든 영화인의 관심이 집중되겠지만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상들인데 누가 양보를 하겠는가? 그저 매년 맥 빠진 반쪽짜리 영화상을 봐야하는 대중들만 흥미를 잃어갈 뿐이다.
김영찬 시나리오 작가 nkjaka@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