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화칠기 장인 이석구씨가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 보석함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박영대기자
10일 서울 중구 장충동 서울클럽. 은은하면서도 풍부한 느낌을 주는 갖가지 색상의 칠(漆) 공예품 70여점이 단아한 모양새를 뽐내고 있었다.
전시 작품을 돌아보는 이들은 2월 발족한 ‘채화(彩畵)칠기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채사모)’의 회원들. 이 모임은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지낸 정양모 경기대 석좌교수(68)가 회장을 맡고 있으며 장을병 한국정신문화원장, 김기주 전 서울교대 총장, 임용순 성균관대 대학원장 등 30여명이 참가하고 있다.
전시품들은 칠기 장인 이석구씨(57·동원공방대표)의 20여년 노력이 깃든 역작들. 이씨는 정양모 교수의 지도를 받으며 채화칠기의 전통을 살리기 위해 헌신하고 있다.
“채화칠기는 고려시대 이전까지 성행했습니다. 고려시대에는 나전칠기가 발달한 데다 조선시대로 접어들면서 간결하고 깔끔한 선비의 멋에 눌려 채화칠기가 사라졌지요.”
이씨가 칠기 공예를 시작한 것은 38년 전부터. 고교 졸업 후 친척이 운영하는 공방에서 기술을 배웠다. 손재주가 있었던 데다 칠기 가구가 인기가 있어 금방 큰돈을 벌었다. 이때는 다른 이들처럼 검정색의 칠기 가구를 만들었다. 그러나 81년 부도를 낸 뒤 마음이 바뀌었다. 그는 “칠기를 그만둘까 생각도 했으나 곧 뭔가 다른 것으로 활로를 찾아보자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마침 책에서 읽은 채화칠기가 떠올랐다.
배울 만한 장인이 없어 처음부터 막막했다. 칠에 안료를 섞기만 한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칠은 마르고 나면 변색되는 데다, 마르는 데도 몇 개월 또는 몇 년씩 걸리는 터라 원하는 색을 내기가 쉽지 않았다. 좌절을 겪을수록 오기가 생겼다. 나전칠기를 만들어 팔아 그 돈으로 채화칠기 연구를 이어갔다.
“10여년 시행착오를 거쳤을까요. 그 때서야 비로소 작품을 만들어 볼 정도의 색을 찾게 되더군요. 그 다음에는 문양을 내는 게 과제였어요.”
2년 전쯤 이씨의 열정을 알게 된 한 문화계 인사가 정양모 교수를 소개했다. 정 교수는 “채화칠기를 한국의 전통 문화상품으로 키울 수 있을 것”이라며 이씨에게 색상과 문양에 관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고, 이 사실이 알음알음 전해지면서 후원회 ‘채사모’도 발족했다. 이씨는 “첫 전시회를 마련했지만 아직도 번듯한 작품이 없다”면서 “연구를 거듭해 채화칠기를 한국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주성원기자 sw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