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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임채청/복제선거 복제권력

입력 | 2002-12-10 18:15:00


대통령선거 유세장이 썰렁하다. 머지않아 대통령이 될 수도 있는 유력 후보가 직접 유세를 해봤자 청중 수백명을 모으기가 빠듯한 경우도 있다. 청중 틈에서 이따금 후보이름을 연호하는 몇몇 당원의 갈라진 목소리가 생경하게 들릴 정도다.

흔히 미디어선거문화가 정착되면서 청중 동원이 사라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일리가 있다. 하지만 그런 설명만으로는 허전하다. 6월 광화문의 열기와 함성을 떠올려보자. TV가 없고 신문이 없고 인터넷이 없어서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광장으로 쏟아져 나왔는가. 아니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벅찬 일체감을 주체하지 못했을 뿐이었다.

결국 유세장의 냉기는 이번 대선이 유권자에게 별 감동을 주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새 세기 첫 대선이자 마침내 3김시대를 넘어서는 선거인데도 이처럼 감흥과 기대를 불러일으키지 못하고 있는 원인은 아무래도 정치권의 퇴영적인 선거행태로부터 찾을 수밖에 없다.

표가 조금이라도 나올 만한 곳이면 아무데나 기웃거리는 ‘앵벌이 선거’, 상대후보의 그럴듯한 공약은 시침 뚝 떼고 베껴 써먹는 ‘커닝 선거’, 그러면서도 자신의 정책만이 한국병의 만병통치약이라고 떠벌리는 ‘떠돌이 약장수 선거’ 등이 구시대 선거행태를 그대로 빼다 박은 것들이다.

또한 상대후보는 무조건 깎아내려야 직성이 풀리는 ‘놀부 선거’, 이 패거리 저 패거리 할 것 없이 손잡고 어깨동무하면서 으스대는 ‘골목대장 선거’, 게다가 여기선 이편인 척하고 저기선 저편인 척하는 ‘분칠한 까마귀 선거’ 등도 그렇다. 거론하기조차 싫은 교묘한 지역감정 조장이야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고도 3김시대를 청산한다고 하니 3김이 뒤돌아서서 웃을 일이다. 3김은 오히려 이렇게 야유할지도 모른다. “당신들이 아무리 본떠 해도 결코 3김은 될 수 없다”고. 사실 이번 대선후보들은 선거에서 이기나 지나 수십년 동안 지역맹주로서 안정적인 정치적 지위를 누려온 3김처럼 될 수 없기에 한층 처절한지도 모른다.

대선 이후가 더욱 문제다. 구태 선거로 탄생한 권력 역시 구태를 벗어버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권력을 쟁취한 권력자일수록 노심초사하면서 결국은 ‘제왕적 통치’로 빠져들기 쉬운 법이다. 이에 반대세력은 격렬히 저항하기 마련이고 그 와중에 정치는 요동치고 국정은 갈팡질팡하는 것을 우리는 그동안 익히 보아왔다.

구태 선거가 구태 권력과 구태 정치를 낳고 다시 구태 선거로 복제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지금 당장 끊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누가 집권하더라도 바로 힘겨운 상황에 직면할 가능성이 있다.

정치권만 개심하면 아직 희망은 있다. 그 싹은 유권자에게서 본다. 요즘 유권자는 동원을 거부하고 금품의 유혹에도 쉽사리 넘어가지 않는다. 후보들간의 지긋지긋한 험담과 비방, 흑색선전과 폭로에도 선뜻 귀기울이지 않고 지역주의 선동에도 예전처럼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 그뿐만 아니라 6월의 환희를 경험한 유권자는 언제나 감동할 준비가 돼 있다.

이 같은 표밭의 변화가 복제된 선거에 다시 생명력을 불어넣을 수 있을 것이고 복제된 권력과 정치도 개혁할 수 있을 것이다.

임채청 논설위원 ccl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