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하버드대 교수에서 한국 벤처 사업가로 거듭난 양우영 사장. 그는 “한국은 정보기술(IT) 분야의 고수들이 모인 곳”이라며 “한국에서 세계 최고의 반도체 기업을 만들겠다”고 말한다.이종승기자
《000년 3월. 양우영(楊羽暎·미국명 우드워드 양·39) 사장에게 선택의 순간이 다가왔다. 그것은 ‘머리’와 ‘가슴’의 싸움이었다. ‘머리’는 그에게 편안한 길을 가도록 이끌었다. 하버드대 교수라는 타이틀, 보스턴에 있는 친구와 가족들, 그리고 그가 태어나서 자란 곳, 미국. 그러나 그의 ‘가슴’은 한국으로 향했다. 그는 부모님의 고국이자 세계 정보기술(IT)업계의 강자로 급부상하는 한국에서 반도체 사업에 도전해 보고 싶었다. 그리고 2년 9개월이 지난 지금 그가 설립한 벤처기업 ‘실리콘세븐(Silicon7)’은 성공의 입지를 마련했다. 9일 ‘외국기업의 날’에는 외국인 투자유치 유공자 산업자원부 장관상을 받았다. 그의 도전은 ‘현재 진행형’으로 아직 최종 결과는 알 수 없지만 편리하고 안락한 것을 추구하는 우리 세대에 ‘도전의 즐거움’에 대해 얘기해 준다.》
●세계 최고들과 겨룬다
“한국에서 뭘 보셨나요.”
경기 성남시 분당에 있는 양 사장 사무실에 들어서면서 기자가 던진 질문이다. 그가 미국 사회에서 가진 많은 기득권을 포기하고 한국으로 날아왔을 때에는 뭔가 이 땅에서 커다란 장래성을 봤다는 것 아닌가.
“물론 미국에서 회사를 세울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일단 경쟁에 뛰어들기로 한 이상 세계 최고들과 겨루고 싶었습니다. 밖에서 본 한국은 한국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뛰어난 나라입니다. 특히 미래를 결정지을 IT 분야에서요. 무선통신과 반도체에서 세계 최고의 실력을 갖춘 곳이 한국인 이상 이곳으로 오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양 사장의 회사 ‘실리콘세븐’은 휴대전화 노트북컴퓨터 개인휴대단말기(PDA) 등 무선통신 기기에 들어가는 메모리 반도체 ‘CCS램(Compact Cell SRAM)’을 독자기술로 개발했다. 특허를 받은 이 램은 데스크톱 컴퓨터에 널리 사용되는 D램의 셀 구조에 S램의 구동 원리를 적용한 것으로 D램의 장점인 소형, 대용량, 저비용과 S램의 장점인 저전력을 결합한 것이 특징이라고 양 사장은 설명한다.
90년대 말 그가 CCS램 개발 아이디어를 처음 내놨을 때 미국은 물론 한국에서의 반응은 썰렁했다. 어떻게 반도체 업계에서 은(銀)으로 통하는 D램을 금(金)과 같은 S램으로 바꿀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회사 설립 후 꼬박 2년 동안 CCS램 개발에 매달린 그는 올 4월 4메가비트(Mb)와 8Mb 제품 양산에 들어간 데 이어 최근 16Mb와 32Mb 양산 체제를 갖췄다. 양 사장의 기술력을 믿은 미국의 대형 반도체업체 AMD는 그가 2년 동안 별다른 수익도 내지 못한 채 제품 연구에 돈을 팍팍 써대도록 자금을 대줬다. 국내외 업체들의 문의가 몰리면서 ‘실리콘세븐’은 내년 1억달러 매출을 목표로 잡고 있다.
그렇다고 해도 삼성 등 대기업이 장악하고 있는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실리콘세븐’의 CCS램이 시장성을 확보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해 양 사장은 “CCS램과 같은 복합기능 S램은 단순한 시제품이 아닌 완제품을 대량 생산할 수 있는지가 매우 중요하다”면서 “물론 대기업들도 뛰어들고는 있지만 아직 그들에게는 주력 분야가 아니기 때문에 양산 체제를 갖추고 있지 못하다”고 설명한다.
●화려한 전력(前歷)을 뒤로 접다
그의 한국말은 아직 서투르다. 인터뷰 내내 한국말로 애써 대답하고 있는 그가 보기에 딱해서 영어로 하라고 하자 어투는 물론 태도 자체가 바뀐다. 한국말로 얘기할 때 조심스럽고 조용하던 모습은 간데 없고 거침없는 태도로 일사천리로 대답을 이어간다.
그의 이런 자신만만한 모습에서는 미국에서 그의 ‘화려한 과거’가 언뜻 엿보인다.
21세에 캘리포니아주립 버클리대 공대를 우등으로 졸업한 그는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전자공학과 컴퓨터공학으로 석사 박사 학위를 받은 후 27세에 하버드대 공대 조교수에 임용됐다.
그가 MIT와 하버드대 교수 자리를 놓고 저울질할 때 친구와 가족들은 그에게 MIT를 가도록 권유했다. 하버드대는 조교수에서 부교수를 거쳐 정교수로 승진하는 비율이 매우 낮기 때문. 그러나 그는 하버드대를 택했다. 한가지 세부적인 분야를 깊이 다루는 MIT보다 다양한 분야를 폭넓게 다루는 하버드대 쪽이 적성에 맞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버드대에서 그는 주전공 분야인 반도체뿐만 아니라 환경공학 수학도 가르쳤다.
하버드대 조교수와 부교수 시절 ‘전미과학재단(NSF) 젊은 과학자상’ 등 이름 있는 상을 여러 차례 받은 그는 33세에 정교수로 승진했다. 하버드대 역사상 가장 젊은 나이에 정교수에 임명된 학자 중 한 명이었다. 하버드대 전자공학과에서 조교수에서 정교수로 승진한 사례도 최근 25년 동안 그가 유일하다.
이 대목에서 그에게 공부를 잘하는 비결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다. “고집이 세기 때문”이라는 게 간단명료한 대답. 어려운 문제와 부닥치면 결코 질 수 없다는 ‘전투태세’로 공부에 임하는 그는 “한번 책상 앞에 앉으면 48시간 이상 잠을 자지 않고 몰두하는 것이 예사”라고 말한다. 버클리대 시절 전자공학을 전공으로 택하게 된 것도 특별히 관심이 있어서라기보다는 가장 어려운 학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의 솔직한 고백이다.
●도전하는 삶이 좋다
하버드대 교수로 잘 나가던 그가 사업에 관심을 돌리게 된 것은 96년부터 4년 동안 현대전자(현 하이닉스)의 반도체 설계 사업의 비상임 컨설턴트로 일하면서부터.
현대전자의 D램 공정 및 PC카메라 이미지센서 개발을 총괄한 그는 한국의 높은 반도체 수준에 감동해 하버드대에 휴직계를 내고 한국에서 직접 사업에 뛰어들기로 했다.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반도체기술을 실무 현장에서 익히고 싶었고 젊은 엔지니어들과 함께 어울려 제품을 개발하는 즐거움도 컸다.
2000년초 벤처 열풍이 막 꺼지기 시작할 때 한국에 진출한 것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느냐고 묻자 그는 “내가 만드는 제품이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될 때 시장에 뛰어든 것뿐”이라며 “벤처 열풍에 휩쓸리지 않은 것이 오히려 다행”이라고 말한다.
“한국 IT분야의 강점은 벤처 열풍이 꺼지면서 수익성 높은 무선통신과 반도체 위주로 산업구조가 신속히 재편됐다는 것입니다. 최근 수년간 미국 실리콘밸리는 ‘죽음의 밸리’가 됐을 정도로 침체돼 있습니다. 수익성이 없는 닷컴 기업이나 인터넷 서비스 기업들이 쓰러진 후 기술력을 갖춘 유망 IT업체들이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60년대 초 미국에 유학와서 자리를 잡고 사는 그의 부모는 아들의 한국행을 말리지 않았다. 12년 전 MIT 재학 시절 만난 그의 부인도 찬성했다. 최종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망설인 것은 그였다. 엔지니어로서는 ‘프로페셔널’이었지만 경영자로서는 ‘아마추어’였기 때문이다. 유명 대학의 교수 생활이 가져다주는 정신적 금전적 안정감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결국 한국에 왔다. 그리고 분당에 30여명의 직원을 둔 조그만 반도체 회사를 차렸다. 휴직계를 낸 하버드대로 언제 돌아갈지, 아니면 돌아가기는 할지조차 그 자신도 모른다. 다만 자신을 업그레이드하기 위해서는 힘든 길을 피하지 말아야 한다고 믿고 있다.
mickey@donga.com
美 유학생에 한마디
10년 이상 하버드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날로 늘어나는 똑똑한 한국 유학생들을 볼 때마다 가슴이 뿌듯했다는 양우영 사장. 정교수였던 덕분에 학부 학생보다는 석박사 과정 학생들과 만날 기회가 많았던 양 사장이 유학을 준비하는 한국 학생들에게 보내는 충고를 소개한다.
▽기본기에 충실하라〓한국 유학생들에게 있어 시험은 ‘전공’이고 연구는 ‘부전공’인 경우가 많다. 그만큼 시험에 대비한 공부에 치중한다는 것. 그가 하버드대 공대에 다니는 한국 유학생들에게 가장 아쉬웠던 것은 수학 물리 화학 등 시험문제를 푸는 기술은 뛰어난 반면 그 문제를 연구에 적용했을 때 창의적 아이디어가 부족하다는 점이었다. 반면 미국 학생들은 시험 기술은 다소 떨어지지만 실제 상황에 들어가면 다양한 해결 방법을 내놓는다. 엉뚱한 아이디어를 낸다고 두려워할 필요도 없다. 자신의 전공 분야에 대한 ‘기술적 이해(technical understanding)’가 아닌 ‘기본적 이해(fundamental understanding)’로 무장하라는 것. 그가 던지는 가장 중요한 충고다.
▽영어에 투자하라〓고전하는 한국 유학생들은 자신이 아는 만큼 영어로 표현하지 못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영어 자료를 읽고 영어 논문을 쓰며 영어 프리젠테이션을 하는 능력이 부족하다면 그만큼 실패할 우려가 큰 것이다. 그는 특히 이공계 유학생에게 영어공부를 많이 하도록 권한다. 최근 그룹 프로젝트가 많아지면서 토론의 기회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또한 한국 유학생들의 영어 구사력은 ‘대화’보다 ‘단어’에서 뒤떨어지는 경우가 많으므로 단어 공부에 치중할 것을 권한다.
▽표현력을 길러라〓대화식 공부가 중요한 미국식 교육에서는 많이 아는 것보다 자신이 아는 것을 상대방에게 설명하고 설득시키는 과정이 더욱 중요하다. 그는 자신의 연구실을 찾는 많은 한국 유학생들이 조리 있게 자신의 생각을 얘기하다가도 수업 시간이나 다른 학생들이 모인 자리에서는 입을 다물고 있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적어도 유학 생활에서는 겸손은 미덕이 아니라고 그는 말한다.
양우영사장은…
△1963년 미국 시카고 출생
△1984년 캘리포니아 주립 버클리대 공대 졸업
△1985∼1990년 MIT대 전자공학·컴퓨터공학 석사 및 박사
△1990년 하버드대 공대 조교수
△1996년 하버드대 공대 정교수
△1996∼2000년 현대전자 반도체설계 비상임 컨설턴트
△2000년 3월∼현재 ‘실리콘 세븐’ 대표
정미경기자 micke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