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제공 올댓시네마
감독들은 누구나 꼭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한가지쯤 갖고 있다.
뉴욕이 배경인 영화를 즐겨 만든 뉴욕 출신의 마틴 스코시즈 감독(60)에겐 ‘1860년대 뉴욕 형성기의 역사’가 바로 그 이야기다. ‘갱스 오브 뉴욕(Gangs of New York)’은 스코시즈 스스로도 ‘30년의 꿈’이라고 표현할 만큼 필생의 역작. 그는 “너무 좋아 (이 영화를) 끝내기가 싫었다. 아니, 어쩌면 나는 아직도 안 끝냈는지 모른다”고 말했다. 지난 주말 뉴욕에서 그를 만났다.
-상영 시간 때문에 프로듀서와 갈등이 있었다는데….(당초 이 영화는 3시간40분짜리로 만들어질 예정이었다)
“‘갱스 오브 뉴욕’은 지금까지 내가 만든 영화 중 비용, 엑스트라 수, 세트의 규모면에서 가장 비싸고 큰 영화다. 그만큼 제작진 등의 압력도 많았고 시간도 오래 걸렸다. 30년간 가꿔왔던 나의 꿈을 2시간44분으로 줄이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내가 택할 수 있는 최선의 결과물을 만들었다.”
-왜 30년이나 걸렸나.
“제작비 문제가 컸다. 뉴욕의 예전 모습은 흔적도 없기 때문에 19세기 뉴욕을 세트로 만들어야 했으니까. 시나리오가 완성되는 데만 25년이 걸렸다.”
이탈리아 로마 인근에 세워진 19세기 뉴욕 거리 세트를 본 조지 루카스 감독의 첫마디가 “아니, 그냥 CG(컴퓨터그래픽)로 해도 되는데…”였다고 했다. 그러나 스코시즈는 처음부터 특수 효과는 배제한 채 “지극히 전통적인 방식으로 이 영화를 만들고 싶다”며 엄청난 규모의 세트를 고집했다.
‘갱스 오브 뉴욕’은 18세기부터 1928년까지 뉴욕 갱의 이야기를 연대순으로 기록한 허버트 애스버리의 동명의 책이 원작. 1970년 이 책을 처음 읽은 스코시즈는 여기 갱들의 이야기에 자신이 어릴 적부터 보고 들어온 뉴욕 이민 노동자들의 역사를 녹여냈다.
이탈리아계인 그는 “영화 속에 나오는 아일랜드 이민자들과 나는 비슷하다. 뭔가 새로운 환경, 새로운 사회에 적응하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이를 통해 미국이란, 그리고 미국인이란 무엇인가를 묻고 싶었다.”
스코시즈 덕분에 이 영화를 보는 팬들은 오랜만에 다니엘 데이 루이스를 스크린에서 만나는 즐거움을 누리게 됐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전망 좋은 방’ ‘나의 왼발’ 등으로 연기력을 인정받았던 루이스는 5년 전 영화 ‘더 복서’(1997년) 이후 활동을 중단한 반(半)은퇴 상태였다.
그러나 ‘순수의 시대’에서 함께 작업했던 스코시즈의 요청으로 루이스는 이번 영화에 출연해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상대역인 ‘빌 더 부처’를 열연했다. 하지만 루이스는 “이번 영화는 마티(스코시즈의 애칭) 때문에 찍었을 뿐 또다시 영화를 할지, 언제 할지는 나도 모른다”고 했다.
‘갱스 오브 뉴욕’의 마무리 대목에서는 1860년대 뉴욕부터 오늘날 뉴욕까지 시대별 뉴욕 변천사가 상세히 이어진다. 맨 끝에는 지난해 9·11테러로 사라진 월드트레이드센터의 모습도 보인다. 테러 때문에 이 영화의 개봉을 1년간 연기했던 스코시즈였지만 이 장면만은 편집에서 잘라내지 않았다. 그는 “비록 사라졌으나 월드트레이드센터는 뉴욕이 갖고 있었던 또다른 모습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스코시즈는 미국의 거장 감독임에도 아카데미상과는 유난히 인연이 없었다. 그는 지금까지 4번이나 아카데미 감독상 후보에 올랐지만 한 차례도 수상하지 못했다. 특히 ‘택시 드라이버’와 ‘성난 황소’ 그리고 ‘좋은 친구들’로 감독상을 타지 못한 것에 대해 그의 추종자들은 ‘아카데미상을 강탈당한 거나 다름없다’고 말한다.
그는 이제 대작인 ‘갱스 오브 뉴욕’으로 내년 아카데미상 후보로 또다시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하지만 그에게 오스카를 기대하느냐고 묻자 “그건 내가 알 수 없는 부분”이라고 짧게 대답했다.
뉴욕〓강수진기자 sjkang@donga.com
●영화사 세번 거치며 우여곡절 공식 제작비만 1억300만달러
세계를 휩쓴 영화 ‘타이타닉’이 제작될 때만 해도 빅히트를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엄청난 재앙’이 될 것이라는 소문만 분분했을 뿐이다.
마틴 스코시즈 감독의 대작 ‘갱스 오브 뉴욕’도 비슷한 과정을 밟게 될까? 제작 지연, 예산 초과, 개봉일 연기가 반복되면서 이 영화에 대한 뒷이야기도 ‘타이타닉’ 못지 않게 무성하다.
스코시즈 감독은 1970년대 후반 이 영화를 구상했으나 제작사가 나서지 않아 손을 대지 못했다. 91년 유니버설 영화사가 제작을 검토했으나 포기하고 97년 디즈니 영화사로 넘어갔다. 디즈니 영화사는 1800만달러를 대기로 하고 나머지를 댈 투자자를 물색했으나 여의치 않았다. 스코시즈 감독의 영화 중 91년 미국 국내에서 7900만달러를 번 ‘케이프 피어’를 제외하곤 흥행 성공작이 없었기 때문. 결국 디즈니는 이 영화의 제작을 미라맥스 영화사에 넘겼고 ‘아카데미의 명가’인 미라맥스는 2001년 아카데미를 겨냥하고 제작에 들어갔다.
당초 책정된 제작비는 8300만달러. 이 마저도 미라맥스 창업 이후 가장 비싼 것이지만, 현재 ‘공식’예산은 1억300만달러다. 할리우드에서는 실제 예산이 1억2000만달러라는 소문도 나돈다. 이것도 3000만∼5000만 달러가 들어가는 마케팅 예산은 제외한 것.
또 스코시즈 감독이 원래 만든 3시간40분짜리 영화에서 1시간 분량을 덜어내기까지 미라맥스 사장 하비 웨인스타인과 스코시즈 감독의 충돌이 심했다는 소문이 자자하다. 결국 2001년 12월 개봉 예정이던 이 영화는 소방관이 폭동에 가담하는 내용이 9·11테러 이후 사회 분위기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올해 7월로 연기됐고, 재촬영과 재편집이 이어지면서 결국 올해 12월에서야 흥행 여부를 판가름받게 됐다.
김희경기자 susan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