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민들의 붕어잡이로 철새가 모두 떠난 쓸쓸한 ‘주남지’.지난해 겨울 장관을 이룬 철새들의 비상 장면(아래).
11월 3만여 마리서 12월엔 고작 2천여 마리 관찰 … 모터보트 이용 어업활동 새 쫓는 듯
올겨울 경남지역으로 탐조여행을 떠날 사람들은 창원 주남 저수지는 가급적 피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매년 수만 마리씩 날아들던 겨울 철새들이 대부분 다른 곳으로 보금자리를 옮겨버렸기 때문.
주남 저수지는 한반도 남동지역 최대 수금류 월동지이자 철새 도래지로, 인근 동판·산남 저수지와 함께 최고의 탐조여행지로 꼽혀왔다. 주남 저수지 자체 면적만 85만5000평. 찬바람이 부는 10월 중순부터 12월 사이에 시베리아, 중국 등지에서 날아온 철새들은 이듬해 3월까지 이곳에서 지내며 겨울을 난다. 인근 구룡산과 백월산에서 흘러내린 계곡 물과 낙동강 물이 만나 빚어낸 맑은 수질에 늪지와 갈대로 만들어진 생태섬(갈대섬)까지 있어,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천혜의 철새 도래지로 평가받고 있다. 생태섬에 자생하는 개구리밥, 붕어마름 등의 풍부한 먹이는 철새들에겐 환상의 겨울 식탁. 이 때문에 주남 저수지에는 천연기념물 201호로 지정된 큰고니와 재두루미(203호), 노랑부리저어새(205호), 개리(325호) 등 희귀 조류를 비롯해 가창오리·청둥오리·큰기러기·새기러기 등 평소 3만~5만 마리의 겨울 철새들이 날아와 장관을 이룬다.
▼전남 해남 저수지 등 한반도 남서지역으로 이동 추정
하지만 올해는 사정이 완전히 달라졌다. 한국조류보호협회 창원지부의 최근 조사 결과 11월 말부터 철새들이 급격하게 줄어들기 시작해 12월 들어서는 10월부터 날아온 철새의 90% 이상이 사라진 것으로 밝혀졌다. 조류협회측이 철새전망대 앞 주남 저수지 360ha 전역에서 확인한 철새는 고작 2000여 마리. 11월13일 조사 때의 3만여 마리에서 무려 93%인 2만8000여 마리가 사라져버린 것이다. 큰기러기는 200여 마리로 13일 조사 때의 3000여 마리에 비해 93%나 줄었고, 1000여 마리에 이르던 오리류인 청둥오리와 흰죽지는 고작 20~30마리만 남았다. 또 천연기념물인 큰고니와 개리는 11월13일 각각 40마리와 3마리가 발견됐지만 이제는 한 마리도 보이지 않고 노랑부리저어새도 14마리에서 9마리로 줄었다.
어떻게 된 일일까. 조류협회 창원지부 최종수씨(생태 사진가)는 “어민들이 굉음을 내는 모터보트를 타고 철새들의 보금자리인 갈대섬까지 접근해 고기를 잡는 일이 많아 새들이 더 이상 견디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2000년 3월 창원시가 3년간 주남 저수지 내수면어업허가를 내주면서 지역 주민들이 모터보트를 이용, 철새들의 보금자리 역할을 하는 갈대섬 주위의 서식환경을 파괴하기 시작한 것. 지난해까지 창원시가 정해놓은 통제선 내에서 어로활동을 해오던 어민들은 올 겨울부터 모터보트를 동원, 통제선 내에서 투망으로 붕어잡이에 나서고 있다.
창원시는 갈대섬 부근에 부이를 띄워 조류금지구역을 설정하고 행정지도를 벌이고 있지만, 금지구역 침범에 대한 제재 규정이 없어 단속을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마창환경운동연합 이인식 공동의장은 “겨울 한철 붕어잡이를 위해 이른 새벽부터 나와 생계활동을 하는 어민들에게 그만두라고 할 수도 없는 형편”이라며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주남지를 매입하는 등의 적극적인 철새 보호 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철새 전문가들은 전남 해남지역 저수지의 철새 수가 10배 이상 늘어난 것으로 미뤄 주남지에서 쫓겨난 철새들이 한반도 남서지역으로 이동한 것으로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