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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반미의 총구 ‘007’ 빵?…‘31일 개봉’ 흥행 여부 주목

입력 | 2002-12-13 17:10:00

극중 북한 강경파 장교 자오 역을 맡은 한국계 할리우드 배우 릭윤(왼쪽)과 본드 역을 맡은 피어스 브로스넌(오른쪽).


007시리즈 20번째 작품인 ‘007 어나더데이’가 미군 장갑차 여중생 사망사건을 계기로 거세게 일고 있는 국내 반미 감정의 높은 벽을 넘어설 수 있을까. 비무장지대와 북한을 배경으로 북한군 강경파 장교 자오(릭윤) 등 악의 세력과 제임스 본드(피어스 브로스넌)의 대결을 그린 이 영화는 한국을 지나치게 비하하고 있다는 비난 여론이 일면서 흥행전선에 먹구름이 낀 상황.

사실 이 영화는 연말 ‘해리 포터와 비밀의 방’과 ‘반지의 제왕: 두 개의 탑’의 흥행 돌풍을 견제할 수 있는 복병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비록 국내에서는 두 영화보다 각각 2, 3주씩 늦은 12월31일 개봉할 예정이지만 미국에선 11월 개봉 첫 주에 1주 먼저 선보인 ‘해리 포터’를 누르고 박스 오피스 1위에 올랐다. 전통적으로 높은 수익을 올린 초대형 영화이기 때문에 국내에서도 당연히 대박을 터뜨릴 것으로 기대됐다.

도대체 어떤 내용이 들어 있기에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일까. 영화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북한에서 비밀 임무를 수행하고 있던 본드가 배신자 때문에 위기에 처하고, 그 배신자의 정체를 찾아다니는 과정에서 사건의 열쇠를 쥔 징크스(할리 베리)를 만나며 전 세계를 파멸로 몰아넣을 놀라운 신무기가 개발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마침내 본드는 신무기 개발과 관련 있는 악당 구스타프와 그의 심복 자오(릭윤)의 본거지에서 한판 대결을 벌인다.

특히 문제가 된 영화 속 장면들을 짚어보자. 첫째, 본드와 본드걸이 헬리콥터를 타고 도망칠 때 초라한 농부 2명이 소를 끌고 가다 폭격기에서 떨어지는 자동차를 쳐다보는 장면. 이 장면이 우리나라를 지나치게 낙후된 국가로 그리고 있다는 것. 둘째, 미국 정보원이 비무장지대에서 “즉시 한국군에게 동원령을 내려라!(Mobilize South Korean army, right now!)”고 말하는 장면. 이것은 국군이 미군에 종속돼 있는 것으로 비춰질 수 있다는 것.

이 같은 한반도에 대한 왜곡된 묘사, 냉전 이데올로기 등을 문제 삼아 배우 차인표·김영철 등이 이 영화의 출연 제의를 거부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 미국에선 개봉 첫 주 ‘해리포터’ 누르고 1위

본드와 본드걸 할리 베리.

반면 이 영화에 자오 역으로 출연한 한국계 할리우드 배우 릭윤은 최근 내한해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이 영화는 결코 특정 국가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특정 인물에 관한 이야기”라며 “지금은 특정 국가가 아닌 개인이 적이 되는, 모호함이 만연하는 시대”라고 말했다.

한 영화평론가는 허구(픽션)인 영화를 두고 국내 여론이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고 아쉬워했다. 그는 “기분이 나쁜 건 사실이지만 영화는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오락일 뿐”이라며 “아랍이나 다른 소국을 비하하는 영화에는 침묵하고 있다가 우리를 비하한다는 이유로 영화 안 보기 운동을 펴는 것은 지나치게 국수주의적”이라고 말했다.

어쨌든 최근의 반미 감정은 영화 흥행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영화 관계자들의 의견은 제각각이다. “한국을 비하하는 내용이 나온다면 관객이 많이 찾지 않을 것”(모 극장 H이사), “불똥을 피해 내년 설 정도로 개봉을 미뤄야 할 것”(모 극장 K씨) 등의 부정적 견해도 있고, “크리스마스쯤이면 반미 감정이 많이 누그러질 것이므로 관객들은 금세 007의 매력에 빠져들 것”(모 극장 O씨)이라며 낙관론을 펴는 이도 있다.

수입·배급사인 이십세기폭스 코리아측은 “네티즌들 사이에서 떠도는 이야기들이 과장된 측면이 많다”며 “한반도를 비하하는 내용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영화를 보고 나면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이십세기 측은 예정대로 12월31일 영화를 개봉해 관객들의 판단에 맡길 계획이다.

정현상 주간동아 기자 doppel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