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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학]´오카방고, 흔들리는 생명´

입력 | 2002-12-13 17:18:00


◇오카방고, 흔들리는 생명/닐스 엘드리지 지음 김동광 옮김/344쪽 1만3000원 세종서적

도무지 여백이라고는 없는 삭막한 도회지 삶 속에서 생물다양성의 의미와 자연의 경이로운 생명력을 섬세하게 읽어낸다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전화 텔레비전 컴퓨터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정확하게 알지 못하듯이 우리는 삶의 근저를 이루는 생명의 열쇠가 무엇인지에 대해 막연한 생각밖에 하지 못한다. 더구나 그저 우리와 무관하게 존재하는 것처럼 생각되는 미생물과 균류, 흰개미, 투구게가 어디에서 왔으며 그물처럼 얽힌 생태계 내에서 그들의 역할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훨씬 더 대답하기 힘들다.

다양한 생물들이 살고 있는 생태계는 왜 안정적인가? 호수와 육지처럼 두 생태계를 가르는 울타리는 과연 있는가? 그 둘을 하나로 묶어 또 다른 ‘하나’가 되게 하는 끈은 무엇인가?

수상 육상 생물과 날것들이 공존하는 오카방고는 다양한 생물종들의 삶이 어울릴 수 있는 환경이야말로 인간이 오래 살아나갈 수 있는 토대임을 일깨워준다. 오카방고 지역의 생태관광에 참여하고 있는 각국 관광객과 안내자.(오른쪽)/사진제공 세종서적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촘촘한 생명의 그물망에 대한 깊은 애정으로 풀어내고 있는 이 책은 저자가 뉴욕 자연사박물관의 전시회 ‘균형 속의 생명(Life in the Balance)’을 기획하고 총책임자로 활동하면서 모은 자료와 연구결과를 모은 책이다. 박물관에서 무척추동물분과 큐레이터로 활동하고 있는 저자는 생태계 진화의 역사를 풍성한 생명의 드라마로 엮어낸다. 저자에게 생태계는 끊임없이 진화하는 거대한 게임의 장이다. 게임 속에서 생물종들은 서로 긴밀한 연관을 맺고 있으며 소멸과 생성, 진화를 거듭한다.

저자는 세계가 멸종의 파도 속으로 휩쓸려 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오카방고라는 원시생태계를 통해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남아프리카의 보츠와나에 있는 오카방고 삼각주 일대는 우리의 아득한 고향이 어디였는지, 또한 문화적인 의미에서 인류가 진화해 온 환경이 어떤 곳이었는지 알려주는 인류의 자궁이나 진배없는 곳이다. 하지만 지금 오카방고는 가난과 기아, 수자원을 둘러싼 격렬한 분쟁, 무분별한 방목 등으로 위기에 처해 있다. 인류의 마지막 에덴동산인 오카방고 삼각주는 생물다양성이 파괴되었을 때 인간의 삶이 얼마나 치명적인 위험에 빠질지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저자는 생물다양성의 붕괴로 인해 우리의 미래가 얼마나 암울해질지 경고하면서도 종의 소멸 자체를 문제삼지는 않는다. 정작 저자에게 문제인 것은 인간의 활동으로 인해 생태계가 스스로 다양성을 회복하는 능력을 발휘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생물들이 자취를 감추고 있다는 사실이다. 늘 외부의 교란에 의해 흔들리는 것 같지만, 미묘하고 섬세한 균형을 유지하며 스스로를 지탱하는 생태계는 인간의 ‘반칙행위’로 인해 게임 그 자체를 종료해야 할 위기에 빠져들고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박테리아에서 포유류, 북극의 툰드라에서 열대지방에 이르기까지 생물종과 서식지에 대한 방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쓰여졌다. 하지만 다양한 생명의 스펙트럼을 마치 직접 여행하듯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어 어렵고 딱딱하다는 느낌을 주지는 않는다. 지금은 사라져 버린 생물들까지도 생생하고 아름답게 그려낸 동식물의 삽화는 깔끔하면서도 박진감 넘치는 저자의 설명에 더욱 활기를 불어넣어 준다. 또한 부록에 수록된 1600년경 멸종된 생물들과 인간이 생존을 위해 의존하는 400종의 미생물, 균류, 동물, 식물의 목록은 어느 책에서도 볼 수 없는 귀한 자료이다. ‘퍼블리셔스 위클리(Publisher’s Weekly)’는 이 책을 1998년 우수도서로 선정함으로써 저자의 애정 어린 노력에 답하기도 했다.

안병옥 시민환경연구소 부소장·생태학 박사 ahnbo@kfem.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