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 전문가 vs 실무 전문가.’ 언뜻 봐서 김&장 법률사무소의 이재후(李載厚) 대표변호사와 오영교(吳盈敎) KOTRA 사장의 관계는 서울 강북 광화문과 강남 저 아래 염곡동에 떨어져 있는 두 회사의 거리만큼 멀어 보인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둘의 ‘궁합’은 잘 맞아떨어진다. 둘을 묶어주는 ‘끈’은 국제 통상과 외자 유치. 국내 진출을 원하는 외국기업과 해외로 뻗어나가는 한국기업을 위해, 이 변호사는 이론적인 법률 조언을 해주고 오 사장은 실무적인 애로 사항을 처리해준다.》
13일 KOTRA 사장실에서 만난 두 사람은 ‘첫 대면’이라는 소개가 어색할 정도로 마치 30년 지기(知己)처럼 술술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우선 이 변호사가 오 사장이 지난해 정부투자기관 경영자 평가에서 1위를 차지한 것에 대해 축하했다. 이에 질세라 오 사장은 이 변호사가 김&장을 국내 1위 로펌으로 키워내는 데 큰 역할을 했다며 화답했다.
본격적으로 얘기가 시작되자마자 첫 주제로 영어가 떠올랐다. 마침 전날 신입사원 면접을 끝낸 오 사장이 “지원자 25명의 토익 점수는 물론 영어 인터뷰 실력이 모두 만점 수준이어서 누구를 뽑아야 할지 머리가 아플 정도”라고 말하자 이 변호사도 금세 고개를 끄덕였다.
“김&장도 외국기업의 인수·합병(M&A), 국제거래 분쟁 등을 많이 다루다 보니 변호사들의 영어 실력은 기본입니다.”
영어 얘기를 하다 보니 자연히 주제는 정부가 추진하는 ‘동북아 비즈니스 중심지(허브)’ 계획으로 옮아갔다.
오 사장은 “결국 동북아 허브 경쟁은 한국과 중국의 싸움”이라고 전망했다.
“한국은 중국보다 국제인지도에서는 떨어지지만 영어 경쟁력에서 앞서니까 이 기회를 십분 활용해야지요.”
이 변호사가 “단지 영어뿐만이 아니죠”라며 거들었다.
“저희 로펌으로 법률 조언을 요청하는 외국기업들은 한국의 기업규제가 심하다는 불만을 털어놓습니다. 정책을 예측하기 힘들고 절차가 투명하지 않다는 거예요.”
기업규제를 놓고 두 사람은 금방 달아올랐다.
이 변호사가 법률 전문가답게 기업경영의 효율성을 떨어뜨리는 정부규제에 대해 얘기하자 오 사장은 오랜 실무현장의 경험을 바탕으로 최근 규제완화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고 맞섰다.
“한국은 기업규제 법률이 많을 뿐만 아니라 이에 따른 하부 규정들도 너무 많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법 집행의 일관성도 부족하죠. 얼마 전에는 한 외국인 투자자가 ‘공장 부지를 샀는데 나중에 해당 지방자치단체가 계획을 변경해 그 땅을 자연녹지로 바꿔버렸다’고 호소한 적도 있습니다.”(이 변호사)
“물론 한국의 규제완화 수준이 아직 선진국에는 못 미친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그렇지만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려는 정부의 노력은 최근 수년간 크게 나아졌습니다. 얼마 전 불가리아를 다녀왔는데 이곳에서 대형 발전기 제조업체를 인수한 현대중공업은 부품까지 자체적으로 만들어야 하는 실정이더군요. 납품 업체와 이어주려는 불가리아 정부의 노력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오 사장)
이날 결코 빠질 수 없는 주제는 중국. 두 사람은 얘기 중간중간 등장하던 중국에 대해 본격적으로 접근하기 시작했다.
오 사장은 “우리나라가 중국은 ‘위협’인가, ‘기회’인가에 대해 논쟁을 벌이는 사이에 중국은 벌써 저 멀리 가버렸다”면서 “이제 한국은 중국의 가파른 성장을 저지할 수 없으니 이용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국은 정보기술(IT) 산업을 이어갈 분야를 빨리 찾아야 하고 부품소재 경쟁력에서 중국을 확실히 앞질러야 한다는 것.
반면 이 변호사는 브랜드 경쟁력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이제 중국에 저가상품을 내다 팔기보다는 브랜드를 수출해야 하는 시대”라며 “중국에 브랜드 상품을 수출하려면 상표등록 등 브랜드 보호 절차를 철저히 밟으라”고 충고했다.
그러자 오 사장도 “맞아요. 최근 동구권에 가보니 청소년들 사이에 삼성 애니콜 휴대전화를 못 가지면 완전 ‘왕따’로 취급받더군요”라며 응수했다.
최근 한국 통상의 최대 현안인 자유무역협정(FTA)으로 주제가 옮아가자 두 사람은 자못 심각해졌다.
“칠레와의 FTA 체결에 2년이나 걸렸다는 점이 마음에 걸립니다. 아시아권에서는 한·중·일간 협정 체결을 빨리 추진해야 하고 비(非)아시아권에서는 멕시코와 우선 협상에 나서야 하는데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벌써부터 걱정이 앞섭니다.”(오 사장)
“변호사라 그런지 협상 전문가의 필요성이 가장 먼저 눈에 띄더군요. FTA 협상도 그렇고 2004년 말로 다가온 도하개발어젠다(DDA) 협상도 그렇고 국내에는 통상협상 전문가가 너무나도 부족합니다. 특히 우리에게는 비교적 낯선 지적재산권, 환경, 서비스 분야를 본격적으로 다루는 DDA 협상에 임하기 위해서는 협상 전문가가 절실합니다.”(이 변호사)
두 사람은 이날 여러 가지 주제에서 공방을 벌였지만 한 가지 점에서는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그것은 다른 나라에 진출하는 기업은 해당 국가의 관련법규를 완전히 꿰뚫고 있어야 한다는 것. 오 사장은 최근 한국에서 주사기를 생산하는 한 말레이시아 회사가 의료기 제조 허가를 받아야 하는 국내 법규를 몰라 수출길이 막힐 뻔한 사건을 예로 들어 설명했다.
이날 두 시간에 걸친 얘기가 끝나자 오 사장은 KOTRA까지 와준 이 변호사에게 고맙다며 1층에서 열리는 ‘한국 무역사 40년’ 사진전을 함께 둘러보자며 그의 팔을 이끌었다.
▼이재후 변호사는▼
△1940년 서울 출생
△서울고, 서울대 법대 졸업,
미 조지타운대 국제거래법 연구소 연수
△65∼79년 대전지법, 서울지법 판사,
대법원 재판연구관 등 역임
△79년 변호사 개업(김&장 법률사무소 대표)
△83년 대한변호사협회 섭외이사
△89년 공정거래위원회 비상임위원
△91년 서울지방변호사회 제1부회장
▼오영교 사장은▼
△1948년 충남 보령 출생
△대전 보문고,
고려대 경영학과 및 경영대학원 졸업
△1990년 주일 한국대사관 상무관
△1997년 통상산업부 산업정책국장
△1998년 산업자원부 무역정책실장
△1999년 산업자원부 차관
△2001년 4월 KOTRA 사장
정미경기자 mickey@donga.com
이정은기자 light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