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적 상상력이란 보통사람들은 엄두도 낼 수 없는 것, 모차르트나 피카소 같은 천재들에게만 가능한 것이라고 잘못 생각하기 쉽다. 물론 예술작품 창조에 필요한 상상력과 기업에서 신제품이나 기술 개발에 필요한 상상력이 같을 리는 없다.
그러나 발명왕 에디슨은 천재란 99%의 노력과 1%의 영감이라고 말했고, 이 말은 인간의 창조적 업적이 대부분 끈질긴 노력의 소산이라는 뜻일 것이다. 과연 그런가? 다음의 경우를 살펴보자.
오늘날 제주도에서 나오는 지하수는 미국 식품의약국(FDA), 일본 후생성 등 선진국의 수질검사에도 합격하여 깨끗하고 질 좋은 물로서 세계적 명성을 얻고 있다. 그러나 30여년 전까지만 해도 제주도는 물이 귀한 섬이었고, 제주도 사람들이 ‘허벅’이라 불리는 단지를 등에 지고 물을 나르던 모습이 오늘날 제주도의 역사적 풍물로 남아 있다.
이렇게 물이 귀했던 제주도가 세계적 지하수 산지로 명성을 얻게 된 것은 어느 보통사람의 정열과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 과정에서 그가 발휘한 상상력을 살펴보자.
1970년까지만 해도 제주도에 관한 연구보고서는 한결같이 “제주도는 화산에서 분출한 용암이 굳어서 된 다공성(多孔性) 지층이라 비가 오면 빗물이 밑으로 스며들어 바닷물과 합류하므로 지하수가 존재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물 부족으로 곡식은 물론 야채도 생산하지 못하는 제주도민의 생계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지하수개발을 강행해 보기로 했다.
1971년 2월 농림부 산하 지하수 개발팀에 근무하던 한규언(韓圭彦·당시 27세)씨가 이 임무를 맡고 제주도로 전임되어 왔다. 한씨는 지하수가 나올 만한 곳을 탐색하던 중 해안 근처 여기저기서 솟아오르는 용출수(湧出水)를 발견했다. 제주도 내륙에 사는 주민들은 멀리 해안까지 내려와 ‘허벅’에 이 용출수를 받아 등에 메고 올라가는 고생을 하고 있었다. 한씨는 이 용출수를 보고 용기를 얻었다.
한씨가 지급받은 지하수 개발용 장비는 몇 개의 회전날개(blades)가 바람개비처럼 돌아가면서 흙이나 모래층을 뚫고 들어가는 범용(汎用) 장비였다. 그러나 제주도는 용암이 굳어 이루어진 암반이어서 이런 장비로는 굴착이 불가능하다고 느낀 한씨는 그것을 개조하기 위한 상상력을 발휘해야 했다. 그는 이 장비를 철공소에 가지고 가서 회전날개 끝에 붙어 있던 텅스텐 조각들을 떼어내어 그것을 철강 파이프 끝에 용접해 붙였다. 이 철강 파이프를 모터로 회전시키면 암반이 원형으로 깎이면서 파이프 속으로 들어오는 암석만 제거하면 관정(管井)이 된다는 것이 그의 상상력이었다. 이러한 노력 끝에 그해 5월 지하 27m에서 그는 지하수를 발견했다. 이것이 지금 북제주군 한림읍 동명리에 보존되어 있는 제1관정이다. 그 후 수백, 수천개의 관정이 개발되면서 제주도는 오늘 같은 지하수 천국이 된 것이다.
노력도 해보지 않고 “제주도에는 지하수가 있을 수 없다”고 단정한 학계의 고정관념을 의지와 정열을 가지고 노력하는 보통사람의 상상력이 뒤엎은 사례가 제주도 지하수의 성공이다. 여기서 “천재란 99%의 노력과 1%의 영감”이라고 정의한 에디슨의 말을 음미해 보자.
산업현장에서 문제해결을 위한 창조적 상상력은 보통사람의 머리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이 그의 메시지일 것이다. 단, 최선을 다하는 정열과 몰입, 포기하지 않는 의지와 인내력이 필요하다. 마리 퀴리가 라듐을 발견할 때 결정적인 역할을 한 상상력, ‘라듐의 양이 아주 적어 그릇 밑바닥에 눈에 안 보일만큼 깔려 있을지 몰라’ 하며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몰두하는 정신의 소산이었다.
▶본보 12월9일자 참조
결론적으로 창조적 상상력에 관하여 우리가 평소에 가지고 있는 착각을 버려야 한다. 창조적 상상력을 소수 천재들만의 전유물로 여기는 착각 말이다.
이 착각으로 인하여 상상력을 발휘하려는 노력을 아예 포기한다면 그것은 사회를 위해서나 본인을 위해서나 큰 손해가 될 것이다.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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