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수능시험이 끝났다. 지난해보다 이과를 희망한 학생이 약간 늘긴 했지만 이공계 기피현상은 여전하다. 1년 정도 정부 각 부처에서 이공계 기피현상을 해소하기 위한 대책을 요란스럽게 내놓았지만 여전히 쉽게 해소될 것 같지 않다. 왜 그런가.
여태까지 정부 차원에서 대책이라고 내놓은 내용들을 한번 살펴보자. 병역특례 확대, 장학금 확대, 우수 과학교사 배치, 연구개발 예산 확대, 기술고시 정원 확대 등이 주 내용이다. 문제는 이런 대책들이 모두 근본적인 문제를 비켜난 사탕발림이라는 점이다. 이런 대책으로는 학생들을 일시적으로 유인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사탕의 단맛이 없어지면 씁쓸한 뒷맛만 남기고 차라리 먹지 않은 것만 못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사실 이공계 기피현상에 대한 답은 아주 간단하다. 이공계를 나와 사회에 진출하더라도 법조 의료 금융 등 다른 분야로 진출한 사람과 비교해 동등한 삶의 질을 누릴 수 있다면 굳이 이공계를 기피할 이유가 없다. 이공계 전공자는 대부분 기술자가 되고 일부는 연구자가 된다. 결국 이공계 문제는 현재 기술자와 연구자의 사회적 지위에 관한 문제다. 바로 이들의 사회적 지위를 향상시키는 방안을 마련해야 근본적 해결책이 되는 것이다.
기술자라면 누구나 꿈꾸는 것이 기술사다. 기술사는 처음 기술변호사와 같은 사회적 위상을 지니는 것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졌고, 국가 경제개발 과정에서 그 역할을 충분히 했다. 그런데 그 기술사가 신음하고 있다. 기술사가 아니어도 동등하게 대우해주는 이른바 ‘인정 기술사’ 제도가 버젓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제도가 있는 한 기술사로서 자긍심을 가질 수 없다. 기술사가 전문자격사라고 하면서 전문 업무영역을 보호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기술사 선발은 노동부에서, 관리는 과학기술부에서 함으로써 기술사정책은 정부 부처끼리의 업무영역 다툼 속에서 갈팡질팡하고만 있다. 그 결과 기술사는 더 이상 기술자들의 미래상이 아니게 돼 버렸다. 기술자들의 꿈이 이렇게 망가져 있는데 어찌 기술자가 돼라고 할 것인가.
연구자의 사회적 위상도 마찬가지다. 외국의 마스터(master)제도처럼 연구자의 30% 정도를 가칭 ‘장인(匠人) 연구원’ 지위로 만들어 연구자가 노력해 장인 연구원이 되면 연봉 및 평생 직장을 보장해 줄 수 있는 조치가 필요하다. 연구원들이 꿈꿀 만한 미래상이 있어야 연구에 전념할 것이 아닌가.
기술자의 사회적 위상을 위해 굳이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논리는 뭘까. 이공계 문제를 경제적 경쟁 논리에만 맡기면 기술분야는 고사하고 만다. 기술분야가 고사해도 좋다면 경쟁논리에 맡겨도 된다. 그런데 이공계가 국가발전, 국가 경쟁력 확보에 중요하니까 이공계를 살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설득력을 얻는 것이 아닌가.
이공계를 살려야 한다면 문제를 근본적으로 풀어야 한다. 기술자의 꽃인 기술사의 사회적 위상을 확립하고, 노력하는 연구자들이 꿈꿀 수 있는 연구자의 꽃을 만들어야 이공계 기피현상이 해소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고영회 대한기술사협회 회장, 성창특허법률사무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