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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8월의 저편 199…몽달 귀신 (1)

입력 | 2002-12-16 17:44:00


앗, 움직였다. 떫은맛을 뺀 도토리를 절구에 찧고 있던 인혜는 절굿공이를 내려놓고 커다란 배를 안았다. 아이고, 아야. 태아는 제자리걸음을 하듯 발을 차며 몸 전체를 한 바퀴 빙 돌렸다. 자다가 몸을 뒤척이는 것일까? 아니면 태어날 날을 위해서 몸을 단련하고 있는 것인가? 이번 달 초순에 산달에 들어섰는데, 시부모님은 아직도 5개월인 줄로 알고 있다. 산달이 다 된 것처럼 배가 부르구나, 틀림없는 사내아이다, 절대 무리하지 말고 몸조심해야 한다. 행여 탈이라도 생기면 아무리 후회해도 소용없다, 라며 어머님은 매일 아침 집안과 가게 청소를 해 준다. 산달이 되면서 몸이 한층 무겁고, 자궁이 수축하는 탓에 배가 딴딴해지는 일이 많아졌다. 무리는 금물, 그러나 쉴 수도 없다. 하루 세 끼 밥 짓는 것은 며느리 일이다. 인혜는 일어나 허리를 펴고서 다시 절구 앞에 앉아 공이를 잡았다.

“태어날 때는 미리 알리야 한다, 알았제? 엄마, 나 나갑니다 하고 말이다. 갑자기 진통이 시작되면 엄마나 너나 힘들다, 잘 들었제?”

태아는 마치 대답이라도 하듯 허리를 세게 찼다. 요즘, 자기도 모르게 수시로 아이에게 말을 건다. 말도 걸고, 배도 만져주고 하면 정말 잘 움직인다.

“내일은 엄마가 스무살이 되는 생일날이다. 너도 빨리 태어나거라. 빨리, 엄마한테 얼굴도 보여주고 목소리도 들려주고. 그래서 엄마 젖도 빨리 빨고.”

인혜는 입은 다물었지만 태아에게 거는 말을 멈추지는 않았다. 아버지는 게장을 아주 좋아한다, 칼국수도 좋아하고 호박죽도 좋아하고. 소원이 고모는 곶감을 좋아한다. 그란데 소원이 고모는 꼭 여동생처럼 엄마를 따른다. 엄마는 언니 넷에 오라버니 하나, 남동생은 하나 있는데 여동생이 없다 아이가, 그래서 내내 여동생이 있었으면 했다고 하니까, 자기는 언니가 있었으면 했다 카면서, 인혜 언니! 하고 엄마를 꼭 껴안는 거라. 우근이 삼촌은 너보다 다섯살 위니까, 형님이라 여기고 같이 잘 놀아라. 귀머거리 3년, 벙어리 3년이라 하지만도, 엄마는 아버님 어머님이 이뻐해 줘서 정말로 행복하다. 자, 도토리 가루가 다 빻아졌네. 물 붓고 끓여서 굳히면 맛있는 도토리묵이 된다. 도토리묵은 우근이 삼촌이 젤로 좋아하는 거다.

글 유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