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스포츠 행위는 원초적 위험성을 지니고 있다. 부상의 위험에서 근본적으로 벗어나는 길은 안 하는 것 뿐. 하지만 그럴 수는 없다. 스포츠는 이제 남는 시간을 활용하는 수단이 아니라, 없는 시간을 쪼개서라도 해야 하는 생활의 일부가 되었기 때문이다. 부상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남은 과제는 부상을 줄이는 것이다.
초보 스키어인 김씨(27)는 스키를 타다가 다리가 부러지고 말았다. 눈에 스키가 걸려 넘어지면서 다리가 돌아갔고, 이때 바인딩이 풀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처음엔 ‘재수가 없었으려니’하고 생각하던 김씨는 사고를 당했던 스키를 점검하면서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바인딩의 이탈 수치가 자신의 신체 조건 보다 높게 조정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는 스키점 기술자의 부주의로 판명이 되었고, 김씨는 스키점에 대해 소송을 준비 중이다.
스키로 인한 다리의 골절은 이탈식 바인딩이 개발되고, 이탈 강도에 대한 표준이 책정되면서 90% 이상 줄어들었다. 장비만 잘 관리하면 10명 중 9명은 부상을 피할 수 있는, 전형적인 ‘인재’인 것이다. ‘인재’에 해당하는 부상에 대해서는 장비를 만들고 판매하는 사람들에게 책임을 일부 물을 수 있게 되어있는데 그것이 ‘제조물 책임법(Product Liability Law)’이다.
제조물 책임법에 따라 스키점이 해야 하는 최소한의 책임은 표준에 맞게 장비를 관리하는 것이다. 스키어의 신체 조건에 따라 바인딩 이탈 수치를 조절해 주고 이를 테스트 하는 행위가 여기에 해당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국내의 현실은 이와는 거리가 멀다. 어깨 너머로 배운 스키 기술자들은 전문 지식이 없는 경우가 많으며 바인딩 테스트 장비를 갖춘 스키점은 극소수이다. 거의 대부분이 제조물 책임법의 대상이라고 해도 될 정도다.
스포츠에서 안전을 추구하는 일은 어떻게 보면 병 주고 약 주는 것 같다. 안 올라가면 될 높은 산에 돈 내고 올라가서 위험한 짓만 골라서 하며 내려오다가 다치고. 또 부상을 줄여보겠다고 머리를 쥐어짜고. 그러나 어쩌겠는가. 다치는 게 무서워 스포츠를 안 할 수는 없지않은가.
은승표/코리아스포츠메디슨센터·코리아정형외과 원장 http://www.kosm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