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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팀]아듀 ‘2002스포츠’히딩크 신드롬

입력 | 2002-12-17 18:08:00



《2002년은 ‘한국 스포츠의 해’. 월드컵축구 4강신화에 온 나라가 ‘대∼한민국’의 함성으로 뒤덮였고 부산아시아경기에는 사상 처음 북한 선수단이 참가해 남북의 7000만 겨레가 하나가 되었다. 또 ‘영원한 마라토너’ 손기정옹을 떠나보내는 아픔도 겪었다. 어느 해보다 다사다난했던 올 한해 한국 스포츠, 영광과 아쉬움이 교차했던 그 순간을 정리해본다.》

네덜란드에서 온 ‘산타클로스’ 거스 히딩크 전 한국축구대표팀 감독(56·PSV 아인트호벤 감독)이 한국에 머문 시간은 1년반 정도. 그 짧은 기간에 한국인은 그의 말 한마디, 몸짓 하나에 울고 웃었다.

히딩크 감독은 단순한 ‘축구기술자’가 아니다. 그는 한국대표팀을 경영한 ‘축구 최고경영자(CEO)’였다. 그는 목표를 세우고 그에 맞는 치밀한 장기계획을 세운 뒤 하나씩 실천해 나갔다.

그 과정에서 프랑스와 체코에 0-5로 잇따라 패하면서 ‘오대영’이란 수치스러운 별명을 얻기도 했지만 그는 흔들리지 않았다. ‘베스트 11’을 빨리 확정하라는 비판이 들끓을 때도 그는 이영표 박지성 송종국 등의 자리를 수시로 바꾸며 멀티플레이어를 양성했다. ‘체력훈련 하다가 부상자만 속출한다’는 아우성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체력강화 프로그램’을 밀어붙였다. 그리고 마침내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끌어냈다.

히딩크 감독의 ‘축구경영’은 크게 5가지로 요약된다. △실력 지상주의(선발 때 혈연 지연 파괴. 주전을 확정하지 않고 무한경쟁 유도) △과학적 처방(스포츠생리학 스포츠심리학을 바탕으로 한 체력 및 전력향상) △강팀과 싸워야 강팀이 된다 △스타보다 조직력 우선 △선후배간 쌍방 커뮤니케이션.

사실 히딩크 감독의 축구경영 방식은 새로운 게 아니다. 유럽의 웬만한 감독이라면 다 알고 있는 것들이다. 국내 감독들도 혈연 지연을 끊어야 한다는 것쯤은 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실천이다. 히딩크 감독은 온갖 눈총과 입방아 속에서도 해냈고 국내 지도자들은 알면서도 하지 못했다는 점이 다르다.

월드컵 4강을 이끈 히딩크 감독은 단군 이래 최고의 영웅으로 떠올랐다. 그의 축구이론을 접목한 각종 경영학 서적이 줄지어 나왔고 대학에선 ‘히딩크 강좌’가 개설됐다. 월드컵 기간에 경기장 스탠드에는 ‘히딩크를 대통령으로’란 플래카드까지 내 걸렸다. 기업은 물론 정치인들도 ‘히딩크 배우기’에 열중했다. 히딩크 감독이 한국을 바꾸는 데 일조했다는 전문가들의 분석도 나왔다. 바로 올해 한국을 휩쓴 ‘히딩크 신드롬’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히딩크 감독의 인기가 점차 식고 있다. 최근엔 한국을 자주 찾아 돈벌이에만 급급하다는 비난까지 나온다. 그래도 그는 우리의 ‘영원한 영웅’임을 누구도 부인하지 못한다.

양종구기자 yjongk@donga.com

■히딩크 말·말·말

▽한국선수들에게 아무 이유 없이 지금 당장 나무에 올라가라고 하면 그 지시에 따를 것인가-2000년 12월 당시 대한축구협회 가삼현 국제부장이 그를 영입하기 위해 처음 만났을 때.

▽킬러 본능을 가진 선수가 필요하다. 이 나이에 내가 그라운드에 나설 수는 없는 일 아닌가-2002년 1월24일 북중미골드컵에서 약체 쿠바를 상대로 한 골도 넣지 못하자 답답해하며.

▽난 영웅에는 관심이 없다. 난 내 일을 할 뿐이고 내 일을 좋아할 뿐이다-2002년 6월3일 ‘폴란드를 이기면 당신은 한국의 영웅이 될 것’이라는 말에.

▽나는 아직 배가 고프다-2002년 6월15일 이탈리아전 승리에 대한 욕심을 나타내며.

▽당신들(한국사람)이 최고다-2002년 6월29일 터키전을 마치고 열성적으로 응원해준 팬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