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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학원가 스타강사된 이만기씨

입력 | 2002-12-19 16:37:00

논술을 강의중인 이만기 소장. /신석교기자


마침 이날의 논제가 ‘자본주의적 인간상’이었다.

‘부의 축적을 최우선으로 하는 자본주의적 인간상을 정당화 혹은 비판하는 글을 쓰시오.’ 메가스터디 교육연구소의 이만기 소장(41)은 대입 논술 시험에 대비해 학원에서 수험생들을 대상으로 논술 특강을 하는 중이었다. 인천의 문일여고를 그만두고 학원 강단에 선 지 한 달이 지났다. 그는 교육방송(EBS)에서 7년간 언어와 논술 강의로 ‘뜬’ 수능 세대의 ‘서한샘’이었다. 입시계에서는 그를 ‘공교육의 표상’이라고 했고 공교육의 표상이 돈 때문에 강사가 됐다며 비난을 퍼부었다.

“이 논제에 대해서는 비판하는 쪽을 택하는 수험생들이 많을 겁니다. 부의 편중, 경제 불평등, 인간성 황폐화 등 자본주의의 문제점들에 대해 더 많이 들어봤을 테니까요. 이럴 때 정당화하는 논리를 펴면 참신하다며 더 좋은 점수를 받겠지요?”

이 소장이 수험생들을 향해 펼친 정당화의 논리는 이랬다.

가난하면 인간의 삶이 불안정해지고 정치가 불안해지며 빈곤 해방을 목적으로 독재가 시작된다, 돈이 있어야 개인은 물론 사회가 안정되고 삶의 질이 향상되며 민주화가 실현된다….

“맹자는 항산(恒産)과 항심(恒心)을 이야기했습니다. 항산은 일정한 생업을, 항심은 평안한 마음을 뜻하지요. 맹자는 선비는 항산없이 항심을 가질 수 있으나 백성은 항산 없이 항심을 가질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강의가 끝난 뒤 다음 강의를 위해 서울 양천구 목동에서 서초구 서초동으로 이동하는 차 안에서 이 소장과 이야기를 나눴다. 이 소장은 전속 기사가 운전하는 체어맨을 타고 다녔다.

● 교사생활 갈수록 힘들어 그만둬

-강의 내용이 이 소장 본인을 두고 하는 이야기 같았다.

“어린 시절 무척 가난하게 살았다. 하지만 돈 때문에 학교를 그만둔 것은 아니다. 맞벌이인데다가 7년간 EBS에서 강의하고 참고서를 집필해 궁하게 살지는 않는다. 일반 교사보다 2, 3배는 벌었고 많이 벌 때는 연간 억대를 벌기도 했으니까. EBS 강사라는 타이틀을 이용해 돈을 벌려고 마음 먹었다면 7년까지 기다리지 않고 벌써 그만뒀을 것이다.”

-그럼 이제 와서 학교를 그만둔 이유는 무엇인가.

“고교에서는 입시 전쟁을 치열하게 치러내야 한다. 0교시 수업, 자율학습 감독, 학생들과의 입씨름, 입시 원서 쓰기 등 이러한 것들을 감당해 내는 것이 나이가 들수록 버겁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장 교감이 되기 전에는 수업 부담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그러나 사립에서는 평교사가 교장 교감이 되기는 무척 어렵다. 공립 학교에 있었다면 학원으로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이 소장은 그동안 꾸준히 학원계에서 영입 제의를 받았다고 했다. 메가스터디에서는 올 초부터 전직 의사를 타진해 왔다. 8월말 학원으로 옮기기로 합의한 뒤 수학능력시험이 끝나고 11월 9일 학교에 사직서를 냈다. 이 소장은 논술 강의로 강사 커리어를 시작했다.

-기대치가 높아서인지 실제 강의를 듣고는 조금 실망했다. 기출 문제 풀이 정도는 학교에서도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내 강의는 전체 논술 특강의 일부분이다. 학생들은 먼저 사회탐구와 과학탐구 강사에게 배경지식 강의를 듣는다. 인간 복제의 윤리성 문제가 논제로 나올 경우를 대비해 과학담당 강사에게 복제와 관련된 기초적인 내용을 배우는 식이다. 언어 영역 강사는 실전 논술을 강의한다. 수강생들이 매 시간 써내는 논술은 전문 첨삭업체가 거둬가서 일정 기준에 따라 첨삭 지도를 하고 전체적인 평가를 한 뒤 점수화해 돌려준다. 학교에서는 이만큼 지도할 여력이 없다.”

-많게는 10억원대 이상의 연봉을 받는 입시 강사들의 생활이 궁금하다.

“벌어들이는 만큼 지출도 많다. 오피스텔이나 아파트를 얻어 개인 연구실로 쓰고 조교 2명과 운전기사를 고용한다. 조교는 자료를 검색하고 강의 교재를 만드는 보조 역할을 한다. 일부 조교는 강사 대신 강의를 하기도 하는데 이를 두고 ‘새끼 강사’라는 표현을 쓴다. 몇몇 강사는 수강생들을 대상으로 자비를 들여 해당 과목의 모의고사를 치르기도 한다. 또 강의 전과 중반 후반에 시험을 치러 성적의 변화를 전산화해 관리하고 강의에 만족하는지, 불만은 무엇인지 피드백을 얻는다.”

● 2시간 강의 위해 40쪽 자료

-수업 준비는 어떻게 하는가.

“애드립은 거의 없고 철저히 콘티에 따라 움직인다. 2시간 강의를 위해 A4용지로 40쪽 분량의 강의 자료를 만든다. 17년간 교사와 EBS 강사 생활을 하면서 축적해둔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한다. 인터넷을 뒤지며 국어 관련 내용은 모두 다운로드 해 둔다. 또 책이나 신문을 보며 지문으로 활용하기 좋은 단편적인 글들도 모아둔다. 36권짜리 백과사전을 2, 3개 모아놓은 용량이다.”

이 소장이 내민 자본주의 인간상의 강의 자료에는 대선 후보들의 TV 토론 내용에서 인용한 대목, 서울 강남구 도곡동에 들어선 타워팰리스와 관련한 신문 기사 스크랩, 불우했던 이 소장의 어린 시절 에피소드, 전투 경찰로 복무할 당시 이야기, 입시기관의 배치표 읽는 법 등이 강의 내용 중간 중간에 들어가 있었다. 칠판에 적어가며 설명해야 할 내용은 강의노트에 따로 ‘판서’라고 표시해 두었다. 이 소장은 새벽까지 강의 자료를 만든 뒤 오전 10시쯤 일어나 낮 12시경 연구실로 출근하는 생활을 하고 있다.

이 소장은 학교를 나오니 무섭다고 했다.

“학원은 정글이다. 학원 강사는 수강생 숫자로 평가받는다. 학교는 오늘 대충 해도 내일을 기약할 수 있지만 학원은 그렇지 않다. 문제는 수강생 수와 강의의 질이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매니지먼트가 명강사를 만들고 명성이 명성을 낳는다. 강의만 충실히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틈틈이 세일즈를 해야 한다. 강의 중간에는 ‘이 강의를 듣지 않으면 입시를 망친다’는 불안감을 심어줘야 한다. 전단지도 직접 만들어야 하는데 업체들은 1만장 뿌리면 등록률이 얼마나 오르는지 통계 수치를 들이대며 설득을 한다. 일부 강사는 휴지, 자, 노트 등을 돌리느라 억대의 광고비를 쓰기도 한다.”

이 소장은 ‘최다 수강생’ ‘전 타임 마감’ 등 학원의 과장된 선전문구에 혹하지 말라고 귀띔했다. 극히 소수의 강사를 제외하고는 전 타임 마감은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 교사와 학원강사 경계 헷갈려

이 소장이 학원행을 두고 마지막까지 망설였던 것은 교사와 강사의 신분적 차이였다. 교사는 존경의 대상이고 강사는 장사꾼이라고 생각했다.

“막상 와 보니 실력있고 성실한 강사는 펜클럽까지 몰고 다니더라. 나처럼 전직 교사 출신의 한 강사는 스승의 날에 학교에서 못 받아본 촌지를 학원에 와서 받아봤다고 했다. 종합반 강사들은 교사와 같다. 오전 8시 출근해 오후 3시반이면 퇴근이다. 교사와 강사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것이 아닌지 헷갈린다.”

사실 이 소장이 학교에서 하던 일도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문일여고는 인천에서는 입시 명문고로 유명하다. 지난해에는 서울대에 5명을 보냈다. 이 소장이 밝히는 비결은 야간 자율학습과 일요일에도 계속되는 보충수업 등 ‘스파르타식’ 입시 교육이다.

“제자 키우는 보람을 느끼려면 시시껄렁한 얘기를 다 들어줘야 한다. 하지만 입시가 최대 목표가 되면 그럴 시간이 없다. 그저 열심히 시험 준비 시키고 입시 원서 부지런히 써서 합격률을 높이는 것이 내 일이었다. 지금 내가 하는 일도 강의하고 원서 쓰는 아이들에게 상담해주는 역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장은 “교사 같은 강사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학원측이 강조하는 이 소장의 마케팅 포인트도 ‘돈 냄새 나지 않는’ 교사 출신 강사이다. 교사와 강사의 차이가 있든 없든 전직 교사라는 이력은 상술로서의 가치를 갖는다. 메가스터디는 이 소장을 영입한 이유로 “사교육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공교육에서 유능한 교사를 모셔온 것”이라고 밝혔다.

이진영기자 eco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