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근, ‘저 꽃이 불편하다’
문학에서 대서사(大敍事)란 더 이상 믿을 수 없는 것이 되어버렸다. 그래도 90년대 중반까지는 대서사의 몰락을 우려하거나 몰락 자체를 또 다른 대서사로 만들려는 경향이 남아 있었지만, 이제는 상실한 서사에 대한 향수나 애도마저 사라져버린 듯하다. 그러나 박영근의 ‘저 꽃이 불편하다’(창작과비평사)는 그런 시대에 대한 불편한 거취를 통해 그 향수와 애도가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무상한 변전을 거듭하는 세상에서 쉽게 변하지 못하는 영혼만큼 무거운 존재가 어디 있으랴.
80년대에 첫 시집 ‘취업공고판 앞에서’를 내면서 그는 일찍이 ‘노동자 시인’으로 우리에게 각인되었다. 그 시절에도 박영근의 시는 다른 노동시와는 달리 현실에 대한 구체적 리얼리티나 비판적 전망을 보여주기보다 실존적 비애를 정직하게 그려내는 데 주로 바쳐졌고, 형식이나 리듬에 대한 남다른 고민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번 시집도 개인적 비애와 시대의 불우가 만나 음울하게 그려내는 풍경화라는 점에서 시의 주조가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다. 그 비극적 색채의 일관성은 다소 낡아 보이기도 하지만, ‘나’와 ‘시대’를 함께 끌어안고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에서 드문 진정성을 느낄 수 있다.
취업공고판 앞에 서 있던 시인은 여전히 구직 신문을 말아 쥐고 전철을 탄 채 ‘나에게는 현실이 없었다’(나는 지금 어디를 바라보고 있는 것일까)고 중얼거린다. 또한 공장 담벼락에 피어난 꽃들을 보며 ‘내가 아직도 통과하지 못한 / 어떤 오월의 고통의 / 맨얼굴’(꽃들)이라고 말한다. 이처럼 어디에도 깃들 수 없는 절망이, 불꽃처럼 살았던 시절마저 살았다고 믿을 수 없는 환각이 그를 끝없이 떠돌게 한다. ‘길’이라는 시로 시작해 ‘물의 자리’로 끝나는 이 시집은 그 기억의 연원을 찾아가는 행려의 기록인 셈이다. ‘끝없는 행려(行旅)가 있을 뿐 돌아갈 곳이 없’(行旅)는 그의 방황을 습관적인 절망의 포즈로 이해해서는 곤란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것은 ‘더 깊이 가라앉아 / 꽃의 뿌리에 닿’으려는, ‘나 있던 본디 자리로’(물의 자리) 돌아가려는 아픈 몸의 고행에 가깝다.
“나에게 시 쓰는 일이란 해체의 또 다른 과정이었거나, 어떤 치유”라는 시인의 말에서 엿볼 수 있듯이, 그는 현재의 자신을 해체하고 기억 속으로 더 깊이 내려간다. 참호와도 같은 기억 속에는 아내와 함께 ‘십오년 넘게 끌고 다닌 그 단칸방들’(겨울비)이 있고, 스무살을 씻었던 ‘영등포 뚝방촌 샛강의 더러운 물빛’(문장수업)이 있고, 애비의 대궁밥을 기다리다 잠이 든 ‘정짓간 환한 아궁이’(문득 세월이 잿더미 속에서)가 있다. 때로 환각과 취기에 힘입지 않고서는 대면하기 어려운 고통이 따르기도 하지만, 그것은 치유와 정화에 이르기 위한 통과의례이기도 하다. 비로소 시인은 봄비 속에서 이런 소리를 듣는다. ‘오그린 채로 잠든, 살얼음 끼어 있는 / 냉동의 시간들, 그 감옥 한 채’를 ‘이제 그만 내려놓아라’(봄비). 누군들 그를 보며 이렇게 말하지 않겠는가. 그만 아프라고, 그 마음의 감옥으로부터 이제는 뚜벅뚜벅 걸어나오라고.
나희덕 시인·조선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