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대통령 선거에도 프랑스와 같은 결선투표제도가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1988년 이후 우리나라의 역사가 지금과는 아주 다른 모습으로 그려지지 않았을까.
프랑스의 결선투표제도는 전체의 과반수를 득표해야 대통령이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고안된 방안이다. 프랑스 대통령 선거는 이렇게 진행된다. 우선 10여명의 후보를 대상으로 1차 투표를 한다. 이 과정에서 짝짓기나 공조는 거의 없다. 이들 중 1, 2등만을 대상으로 2주 후에 결선투표를 해 최종 당선자를 결정한다. 2명만을 대상으로 한 투표이므로 당선자는 당연히 과반수 득표를 하게 된다.
1995년 선거에서는 1차 투표에서 리오넬 조스팽이 자크 시라크를 이겼다. 그러나 2차 투표 결과는 시라크씨의 승리였다. 올해 5월에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많은 사람들의 예상은 ‘2차 투표에서 시라크씨와 조스팽씨가 접전을 벌이다가 조스팽씨가 근소한 차로 승리할 것’이란 것이었다. 그런데 결과는 조스팽씨가 1차 투표에서 3등으로 밀려 결선투표 후보에도 오르지 못하는 대이변이었다. 이에 따라 시라크씨가 결선투표에서 압도적인 표차로 대통령에 재선된 것은 물론이다.
이같이 결선투표제도에도 의외성은 존재한다. 한국과는 또 다른 형태의 혼란과 이합집산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반수를 확보한 대통령이라는 점에서 당선자에게 확실히 힘이 실린다.
그렇다면, 한국에도 결선투표제도가 필요한 것일까. 답을 구해 보고 싶다면 우선 프랑스와 한국은 상황이 아주 다르다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프랑스의 결선투표제에서 높이 살 점은 제도 그 자체보다 프랑스인이 자신들에게 가장 알맞은 제도를 찾아냈다는 점이 아닐까.
프랑스는 다양성의 나라다. 정치에서도 마찬가지여서 우리의 시각으로 보면 너무 많은 정당들이 난립하고 있다. 올해 대통령 선거 1차 투표에는 극우에서 극좌에 이르기까지 모두 16명이나 되는 후보자가 출마했다. 대통령에 당선된 시라크씨도 1차 투표에서는 겨우 19.7%밖에 득표하지 못했다. 이러한 다양성은 자칫 혼란으로 이어지기 쉽다. 실제로 프랑스는 정당 난립으로 많은 정치적 혼란을 겪었다. 결선투표제를 채택한 것은 정치적 다양성을 버리지 않으면서도 안정을 유지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대통령과 총리의 출신정당이 다른, 동거정부라는 색다른 형태의 정국 운영방식도 만들어냈다.
87, 92, 97년 세 차례 한국의 대통령 선거를 지켜보면서 프랑스식 결선투표가 한국에도 꼭 필요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이제 2002년 대선이 끝났고 새 대통령이 선출됐다. 한국의 대선이 차기에도 양자대결 구도로 갈 수 있을지 모르지만, 세 번의 경험 끝에 2강으로 돌아온 것을 보면 한국과 프랑스는 역시 다르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프랑스의 경우 앞으로도 상당기간 결선투표제를 필요로 할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프랑스 사람들에게 1차 투표에서 당선자가 나올 수 있겠느냐는 질문을 해 보면 그 답은 언제나 ‘앵포시블(Impossible·불가능한)’이다. 역시 300여 종류의 다양한 치즈를 만들어내는 나라의 국민다운 답이다.
노찬 외환은행 파리지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