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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성교수의 뇌의신비]통제력 잃었을때 '거울형 글쓰기'

입력 | 2002-12-22 17:30:00


아랍인은 글씨를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써 내려간다. 이와는 달리 우리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쓴다.

그런데 아랍인이 아닌데도 글자를 마치 거울에 비친 것처럼 좌우를 반대로 하여 쓰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글쓰기를 ‘거울형 글쓰기’(mirror writing)라고 하며 뇌중풍 환자의 약 1∼2% 정도에서 나타난다.

가장 흔한 경우는 왼쪽 뇌에 뇌중풍이 생겨 오른쪽 팔에 마비가 온 환자에게 왼쪽 손으로 글씨를 써 보라 할 때이다.

하지만 글씨를 거꾸로 쓴다고 그 사람의 뇌가 반드시 비정상적인 것은 아니다. 실제로 아이가 글쓰기를 처음 배울 때 잠시 거울형 글쓰기를 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드물게 어른이 되어서도 간혹 거울형으로 글을 쓰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은 대개 왼손잡이다.

정상인의 거울형 글쓰기는 영국의 생리학자인 앨런 박사에 의해 1896년 처음 보고됐는데, 그는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을 기술했다.

그는 어느 날 왼손으로 좌우를 거꾸로 해 글씨를 써 보니 전혀 아무런 문제가 없이 잘 써지는 것을 발견했고 그 사실을 ‘브레인’(Brain)지에 투고했던 것이다.

이외에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쓴 영국의 루이스 캐럴, 르네상스의 거장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간혹 거울형으로 글씨를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다빈치가 그린 북부 이탈리아 지도에는 일부 글씨의 좌우가 거꾸로 적혀 있다.

거울형 글쓰기의 원인에 관해 몇 가지 주장이 있다. 피아노를 못 치는 사람이 양손으로 피아노를 치면 왼손은 오른손의 반대로 쳐진다. 즉 오른손이 높은 음을 치면 왼손은 그만큼 낮은 음을 치게 된다.

글쓰기 역시 왼손잡이는 오른손잡이와는 반대로 오른쪽에서 왼쪽 방향으로 써 내려가는 것이 원래는 더 자연스러운지 모른다. 다만 교육의 힘에 의해 왼손잡이들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쓰도록 억지로 학습됐다면 뇌중풍 같은 병이 생겨 그 억제력이 풀렸을 때 원래대로 쓰게 된다는 주장이다.

두 번째는 원래 좌우 손의 운동은 양쪽 뇌에 서로 반대 방향으로 기록돼 있는데 이중 우세한 쪽 방향으로 평소 글을 쓰다가 뇌의 질병이 생기면 이것이 억제되고 따라서 그 동안 숨어 있던 반대방향의 움직임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뇌의 손상에 의해 공간 파악능력에 혼돈이 생겨 글씨를 거꾸로 쓰게 된다는 주장도 있다.

울산대 의대 서울아산병원 신경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