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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포럼]최정호/南-南갈등 극복하려면

입력 | 2002-12-22 18:09:00


세기가 바뀌도록 정치적 긴 꼬리를 끌어 온 3김씨에 비하면 노무현 당선자는 신선하리만큼 젊다. 그러나 그와 동갑인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2년 전에, 그리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47세의 나이에 이미 대통령이 된 사실에 비춰 보면 56세의 노 당선자는 국정의 책임자로 나이에선 부족함이 없다. 서독의 빌리 브란트 총리가 집권한 것도 우연히 56세 때였다.

▼'닮은 꼴' 盧당선자와 獨브란트▼

노무현과 브란트는 정치 사회적으로 아웃사이더가 인사이더가 되었다는 출신 경력에서, 그리고 다 같이 잡은 권력으로서 뭔가 인간적인 선(善)을 실현해 보겠다는 소신 표명에서 비슷한 배광(背光) 속에 등장한 것으로 보인다. 또 두 사람 다 반대파의 세(勢)가 막강한 판도에서 집권하게 된 점도 유사하다. 브란트는 반대당 한두 명의 숨은 반란 동정표로 의회의 불신임을 가까스로 모면했고, 노무현은 앞으로 여소야대 국회뿐만 아니라 이회창 후보에 투표한 1144만 명의 유권자를 상대로 그가 당선 제1성으로 밝힌 대통합의 시대를 열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가 극복해야 할 갈등과 분열의 시대가 남긴 가장 큰 정치적 부(負)의 유산이란 무엇인가. 경실련이 노 당선자에게 바란다는 성명의 첫 조목에서 옳게 지적한 대로 김대중 정부의 대북 정책이 일방적으로 진행되면서 생긴 남남 갈등이다. 따라서 새 정부가 국민 대통합의 시대를 열어 가기 위해서는 대북 정책을 새롭게 조율하는 일이 급선무가 될 것이다.

분명한 것은 오늘날 국론이 갈라지고 있는 것은 북과 대화를 ‘하느냐, 안 하느냐’에 있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것을 ‘어떻게 하느냐’에 국론이 갈라지고 있는 것이다. 대북 정책을 재점검해야 할 이 시점에서 몇 가지 요점을 들춰보고자 한다.

우선 북핵 문제가 다시 불거진 오늘의 상황에선 우리도 1962년 가을, 핵전쟁 일보 전의 쿠바 미사일 위기 때의 미국 케네디 대통령처럼 ‘협상을 두려워해서도 안 되고, 두려움 앞에서 협상을 해서도 안 된다’는 의연한 자세가 필요하다.

둘째, 사람이 만든 말이 거꾸로 사람을 구속한다. 국내외에서 평가절하되고 있는 용두사미의 ‘햇볕정책’이란 말의 동화적 우의(寓意)에 더 이상 포로가 되지 않기 위해 노 당선자는 자기의 대북 정책의 기본 철학을 명시하는 새 표제를 내놓는 것이 바람직하다.

셋째, 서독의 동방 정책이 성공한 첫 요건은 그를 추진한 주역들이 확고한 반나치주의자이자 확고한 반소비에트주의자였다는 사실을 어느 영국 학자는 지적하고 있다. 백색 적색의 전체주의 독재에 다 같이 저항해서 싸운 브란트는 그의 책 ‘링크스 운트 프라이’(Links und Frei·left and free)란 표제처럼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신봉하는 좌파였다.

넷째, 그렇기에 브란트의 동방 정책은 아데나워의 서방정책의 부정이 아니라 그를 긍정한 토대 위에서 추진함으로써 강력한 협상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우리도 북과의 협상을 위해선 기존의 동맹 관계를 약화시켜서가 아니라 더 공고히 함으로써 북한을 개방시키고 북녘 동포를 돕는 데에 더 큰 힘을 얻게 될 것이다.

다섯째, 우리는 북녘의 유명한 ‘통 큰’ 한 사람의 지도자가 아니라 그 밑에서 떨고 있는 2000만 무명의 북한 주민들을 항시 시야에 잡아두지 않으면 안 된다. 절대 권력자의 비위에 거슬릴까 두려워 북한 동포의 삶의 현실을 외면한다는 것은 대북 정책의 본말 전도요, 주객 전도이다.

▼'투명한 대북정책' 우선돼야▼

마지막으로 대북 정책이야말로 현 정부와는 달리 앞으론 여야 국민을 상대로 투명하게 추진되지 않으면 안 된다. 브란트의 오른팔로 동방정책의 입안 추진 과정에서 제2인자 역을 맡았던 에곤 바 전 총리실 장관은 옛 소련 및 동유럽 제국과의 모든 협상 단계마다, 그리고 동유럽 여행에서 돌아올 때마다 야당 지도자들을 찾아가 브리핑해 주었다고 지난해 방한했을 때 어느 모임에서 술회한 적이 있다.

국민적 합의의 넓고 단단한 지반 위에 대북 정책을 투명하게 추진하는 것이야말로 남남 갈등 극복의 필수적인 전제이다.

최정호 울산대 석좌교수·언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