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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전망대]중국시장 '제살 깎아먹기'

입력 | 2002-12-22 18:49:00


“상하이를 끌어들여 베이징을 친다.”

마오쩌둥(毛澤東)이 문화혁명 때 구사했던 정적(政敵) 제거 전략이다. 상하이에는 당시 친(親)마오쩌둥 세력이 집결해 있었고 베이징은 반(反)문혁파가 주류를 이뤘다. 마오쩌둥은 상하이 추종자들을 부추겨 베이징파의 거두인 류사오치(劉少奇) 국가주석과 펑전(彭眞)베이징 시장을 공격토록 했다.

먹잇감을 직접 사냥하지 않고 제3자의 손을 빌려 실리를 취하는 고전적인 전략은 오늘날의 경제현장에서도 금과옥조가 되고 있다.

중국정부는 무선통신 사업을 추진하면서 유럽방식의 GSM과 미국형 CDMA를 병행했다. 미국과 유럽 기업들은 경쟁적으로 중국투자에 나섰고 덕분에 중국은 단숨에 정보통신 강국으로 부상했다. 자신감이 붙은 중국은 최근 GSM도 CDMA도 아닌 독자적인 TD-SCDMA를 선택하겠다고 발표했다. 무차별적인 ‘기술과 돈’ 공세를 폈던 외국기업들은 당황해 할 수밖에.

그러면 한국기업들은?

덤핑과 따라하기 투자는 물론이고 심지어 한국 기업의 영업 전략을 중국 경쟁업체에 흘려주는 일까지 일어나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한국기업끼리 제살 깎아먹기’식이라는 표현은 점잖은 축에 든다. ‘자폭(自爆)’ ‘공멸(共滅)’ ‘지리멸렬(支離滅裂)’이라는 말이 더 정확한 듯하다.

최근 신화통신은 음향기기 부품을 생산하던 한 한국 중소기업의 중국 철수기를 실었다.

“경쟁자는 중국이나 대만업체가 아니었다. 원가를 밑도는 납품가를 제시하면서 이미 확보한 고객을 빼앗아 간 것은 한국인이다. 결국 중국업자들에게 좋은 일만 시킨 셈이다. 기술주고 돈주고….”

한국의 유화제품이 가을 들어 중국에서 잇따라 반덤핑 판정을 받은 것도 사실은 한국업체간 과당경쟁 영향탓이 크다.

무역협회가 얼마 전 중국 주력 수출업체 144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보고서를 보면 억장이 더욱 무너진다. 응답업체의 59.5%가 ‘해외 기업보다는 국내 동종업계와의 경쟁으로 피해를 입었다’고 답했을 정도니 국내업체들 끼리의 이전투구는 이제 도를 넘어섰다는 생각이다.

때문에 중국 파트너들이 기술이전이나 합작투자 압력, 불리한 계약조건 변경을 밥먹듯이 요구해도 속수무책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반면 외국 기업들은 어떤가?

일본의 도시바 히타치 NEC 등 5개 대형 업체들은 최근 중국을 포함한 거대 LCD 시장에서 한국업체들의 공세에 밀리자 합동으로 신기술 개발에 나서기로 합의했다. 개발비용을 3분의 1로 줄일 수 있고 신흥시장에서의 투자위험을 줄일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중국은 분명 ‘위기이자 기회의 땅’이다. 그렇다면 굳이 한국기업 스스로 ‘위기’를 만들 필요는 없지 않은가.

bbhe424@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