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난 얼굴로 돌아보라.’ 존 오스번의 희곡 제목인 이 말은 1950년대 영국의 ‘성난 젊은이들’을 상징한다. 기성세대의 권위를 거부하고 새로운 세계를 갈망하는 것은 젊은 세대의 영원한 표상이다.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에서도 ‘386세대’ ‘신세대’ 그리고 ‘N세대’ 등 젊은 세대들이 새로운 변화의 바람을 몰고 왔다.
젊은 세대가 주도한 유쾌한 반란은 이번 대통령선거에서도 여지없이 나타났다. 선거 결과를 보면 노무현 후보의 당선에는 20대 신세대와 30대 386세대의 지지가 결정적인 원동력이 되었다. 막판을 장식한 한밤의 지지철회 소동을 잠재운 것도, 야당이 주장한 숨어있는 표심(票心)을 압도한 것도 노 후보에 대한 젊은 세대의 열렬한 지지였다.
▼성난 얼굴, 따뜻한 얼굴▼
이런 흐름이 대선에서 처음 나타난 것은 아니다. 그것은 6월 월드컵 길거리 응원과 최근 촛불시위에서 위력을 떨친 바 있다. 하지만 대선이 그것들과 다른 것은 세대간 이분법, 즉 냉전세대와 탈냉전세대, 권위주의 대 자유주의, 집단주의 대 개인주의의 이분법이 가감 없이 드러났다는 점이다. 영호남 지역주의를 잠시 접어둔다면 이번 대선을 ‘세대전쟁’ 또는 ‘세대혁명’이라 부르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이 세대혁명을 낳은 일차적인 원인은 구태의연한 기성정치다. 세상의 모든 것이 빠른 속도로 바뀌고 있는데도 정작 정치에서는 거의 변화가 없으니 다수의 젊은 세대에는 기성정치를 거부하는 게 자연스러운 흐름을 이뤘다. 노 후보로 상징되는 것은 시민사회 젊은 세대로부터 분출되는 변화에 대한 열망이었으며 이 열망은 정보화와 세계화의 물결을 타면서 더욱 강렬해졌다. 이 점에서 젊은 세대와 인터넷이야말로 이번 대선 드라마의 또 다른 주인공이었다.
문제는 세대혁명이 가져오고 있는 사회적 파장이다. 먼저 젊은 세대가 권위주의와 집단주의를 거부하고 자유주의와 개인주의를 선호하는 것은 긍정적이다. 민주주의는 자율적 시민사회 위에서 성숙할 수 있으며 이 자율적 시민사회는 개인주의와 자유주의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이번 대선은 우리 시민사회의 보수적 성격이 이미 균열되기 시작했다는 것을 상징하는 예광탄이기도 하다.
물론 보는 시각에 따라서는 젊은 세대가 포퓰리즘적 성향을 보여주고 있다는 우려가 있을 수 있다. 그들은 이성보다는 감성, 논리보다는 이미지를 중시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포퓰리즘이 등장한 것에는 젊은 세대의 감성 정치적 경향 못지않게 여전히 우리 정치가 이들의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다는 데에도 그 원인이 있다. 정치권이 시민사회의 의사를 반영하는 정책과 이념으로 당당히 경쟁한다면 기성정치를 거부할 젊은 세대는 사실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이 점에서 기성정치에 대한 젊은 세대의 반란은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적지 않다.
하지만 다른 한편 세대차이에 따른 세대 긴장 또한 주목해야 한다. 오늘날 정보화와 세계화의 바람을 타고 있는 젊은 세대와 그렇지 않은 기성세대는 사고방식에서 생활양식에 이르기까지 과거와는 사뭇 다른 세대 격차를 보이고 있다. 동일한 공간에서 살아가고 있되 서로에게 너무도 낯설고 소외되며 서로를 부정하는 게 우리의 현실이라는 것을 솔직하게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우려되는 것은 정보화와 세계화가 돌이킬 수 없는 경향이라면 앞으로 이런 세대 긴장에 따른 세대간 단절이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소통과 공존의 지혜 찾을때▼
바로 여기에 6월 길거리 응원에서 나타난 경험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때는 젊은 세대든 기성세대든 우리는 둘이 아니라 하나였다. 정보사회의 도래가 세대 격차를 심화시킨다 해도 서로를 이해하고 승인하는, 열린 소통과 공존의 지혜를 모색한다면 세대 긴장은 점차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성난 얼굴로 돌아보라. 그러나 동시에 서로 당당하면서도 따뜻한 얼굴로 이야기하라. 이것은 이번 선거가 우리에게 주는 또 하나의 교훈일 것이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 ·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