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한 언론이 우리나라 국가원수를 ‘빌보드 차트(인기가요 순위) 대통령’이라고 조롱한 적이 있다. 대중적 인기에 집착해 고통이 전제되는 정책에 눈을 돌리지 못한 나머지 나라를 수렁에 빠뜨렸다는 뜻에서 그렇게 빈정댄 것이다. 5년전 외환위기 때 우리 대통령에게 붙여졌던 이 불명예스러운 이름은 인기라는 것이 결과이지 목표 그 자체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말해준다.
빌보드 차트에 투표하는 사람들은 대개 결집된 소수집단이다. 이들은 늘 조직화되지 못한 다수를 압도하고 변화를 이끎으로써 그들이 선택한 ‘인기가요’에 대중이 익숙해지도록 만든다. 방관과 비판의 다수도 존재하지만 구심점 없는 불만은 ‘침묵의 소리’에 그치게 마련이다.
▼´개국공신´ 에 대한 부담 벗어야▼
노무현 대통령당선자에게 오늘날 승리의 영광을 안겨준 결집된 집단은 이른바 ‘노사모’로 불리는 열성 팬들과 2030세대라는 우리 사회의 신진 세력들이다. 그리고 90%이상의 지지율로 그를 떠받쳐준 호남의 유권자들도 그를 대통령자리에 오르게 한 결정적 역할의 주인공들이다. 당신이 뜻을 이루도록 지렛대 역할을 자임했던 이들 세력의 헌신을 노 당선자는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인류의 오랜 정치사를 통해 선거과정에서의 지렛대들이 당선된 지도자의 재임 중 걸림돌로 변질되는 경우를 여러 번 목격해왔다. 영광의 권좌에 오른 후 지렛대에 대한 부담 때문에 국정운영 한번 제대로 못하고, 그렇다고 지지세력에 대한 빚도 시원하게 갚아주지 못한 채 수모와 회한에 묻혀 퇴역한 대통령이 한두 명이 아니다.
현명한 인간은 과거의 교훈을 미래의 지침서로 삼는다. 실패한 만국 지도자들의 어리석은 행적을 그대로 밟지 않으려면 노 당선자는 우선 이들 ‘개국공신’에 대한 마음의 부담으로부터 속히 벗어나야 한다. 유권자들이 원했건 원치 않았건 일단 당선된 이상 그는 자신의 말대로 ‘모든 국민의 대통령’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지렛대들이 5년을 갈구한 끝에 이룬 성취에 만족하고 스스로 마음속의 사적(私的) 기대와 일방적 욕구를 억제해 준다면 그보다 더 좋은 예방약은 없다. 그런 일에 앞장서야 할 존재로 노사모가 꼽힌다. 노사모가 이름 그대로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라면, 아무 조건 없이 순수하게 시작된 이 운동의 정신에 따라 이제는 그를 자유롭게 해 주는 더 큰사랑을 베풀어야 한다. 비판을 위해 그대로 존재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채권자 의식이 곁들여진 세력집단으로 변질될 위험은 스스로 경계해야 할 대상이다. 대통령을 탄생시켰다는 신화를 역사에 남기고 임무를 해제할 때 그 희생은 더욱 아름다운 ‘사랑’의 기록으로 남을 것이다.
2030세대에 대한 노 당선자의 부담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이들로부터 새 정치에 대한 희망을 보았다는 주장도 있지만 그렇다고 이미 그들의 시절을 지내고 더 많은 경험을 쌓아오며 살아온 이 나라 기성세대의 존재가 2030세대의 목소리에 파묻힌다면 그건 국가적 손실이자 사회적 비극이다. 이번 대선에서 상대적으로 가장 날카로운 대립각을 세웠던 두 집단의 욕구를 아우르려면 젊은 세대의 패기는 인정하되 상대적으로 결집력이 약했던, 그래서 목소리가 작아 보였던 기성세대의 지혜는 대단히 무겁게 존중되어야 한다.
▼모든 국민 아우르는 균형정치를▼
95% 이상의 지지율을 포함해, 절대 다수가 표를 모아준 일부지역에 대한 부채의식을 극복하는 것도 노 당선자의 숙제다. 그런 지지율에 내놓고 비판하는 사람들뿐 아니라 속으로 경악하고도 겉으로 표현하지 않는 비조직적 다수의 마음은 이 땅에 또 하나의 지역대결을 잉태시킬 수도 있다. ‘지역주의 극복을 위해 영남 후보를 선택했다’는 호남 유권자들이 그 정신을 지키는 길은 노 당선자가 범국가적 균형감각을 가질 수 있도록 마음을 풀어주는 일이다.
사회의 자율조절 능력은 놀라울 정도로 강하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는 것을, 또 그런 기간이 오래 지속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던 것이 우리 사회다. 지렛대가 걸림돌로 변질될 때 침묵하는 다수의 냉소는 또 다른 선택을 준비할 수도 있다. 성공한 대통령이 되는 길은 그걸 예방하는 일이다.
이규민 논설위원실장 kyum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