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돈 거래를 전혀 하지 않고 30년 이상 기업을 이끌어 왔다는 박종규 회장은 “기업이 ‘정도 경영’을 할 때 강해진다”고 말한다. 그는 그렇게 애써 키운 기업을 자식이 아닌 전문경영인에게 맡겼다.이훈구기자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자는 구호가 우리 사회의 새로운 유행어가 되고 있다. 기업의 위상이나 역할을 제대로 평가하고 기업활동이 잘 이뤄질 수 있도록 각종 규제를 완화하고 지원제도를 갖추자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고용과 부의 창출에 기여하는 기업의 기능을 생각하면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건 당연하다.
한편으로는 ‘기업하기 좋은 환경’이 아니라는 기업인의 불평을 접하는 상당수의 사람은 기업(인)이 규제라든가 제도적 장벽 같은 외부적 요인만 탓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품는다.
사실 우리 사회의 ‘반(反)기업 환경’의 상당 부분은 ‘반(反)기업정서’에서 비롯된다는 분석이 있다. 이 같은 정서의 근원에는 돈 가진 자, 힘있는 집단에 대한 무조건적 질시도 없지 않겠지만 적잖은 비리와 부패의 기억으로 얼룩진 기업의 ‘원죄’에 대한 반감도 있다.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기업인 스스로의 책임도 크다. 왜 우리 사회에는 사랑받고 존경받는 기업과 기업인을 보기 힘든가. 이런 자문에 대한 대답을 구하는 것이 기업인의 책임을 찾는 첫걸음일 수 있다.
서울 종로구 관훈동 관훈빌딩 9층. ‘바른경제동인회’라는 간판을 내걸고 있는 조그만 사무실에서 만난 박종규(朴鐘圭·67) KSS해운회장은 기업인에게 그런 질문을 던지고 있다.
박 회장이 창업한 KSS해운은 유독성 화학 화물을 30여년간 거의 독보적으로 수송해온 회사다. 작지만 탄탄한 회사라고 해서 ‘스몰 자이언트’라고도 불린다. 그러나 이 회사가 적잖은 사람에게 특별히 주목받고 있는 것은 그런 사업적인 성공 때문만이 아니다. 오히려 박 회장의 지난 30년간 ‘실험’이 던진 신선한 충격 때문이다.
그가 KSS해운을 창업한 것은 33년 전 잠시 몸담았던 어느 개인회사에서의 경험이 계기가 됐다. 사주가 회사 돈을 개인 돈처럼 사용하는 일종의 한국 기업병을 목격한 것이었다. 그는 미련없이 사표를 던졌다. 그러나 환멸은 환멸로 끝나지 않았다. 그는 새로운 도전의식에 불탔다.
“오냐, 내가 한번 깨끗한 기업을 해보자는 오기가 들었어요.”
1969년 말 300만원으로 KSS해운을 설립하면서 한가지 원칙을 세웠다. 당시 해운업계의 고질적 관행이던 ‘리베이트(뒷돈)’ 안 주고 안 받기를 선언한 것이다. 그러나 오랜 관행을 깨기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첫 계약부터 난항에 부닥쳤다.
“큰 화학업체에 일본 회사보다 t당 50센트 싸게 운임을 쳐주겠다는 제안서를 냈죠. 그런데 실무진은 좋다는데 그 회사 사장이 최종 결재를 안 하는 겁니다. 알고 보니 일본 회사에서 t당 50센트씩 뒷돈을 받았더군요.”
자신이 세운 창업원칙의 첫 번째 시험대였다.
“차라리 운임을 더 깎아주겠다고 설득했죠. 종업원들이 결국 사장이 리베이트를 챙기고 있다는 걸 알게 되면 직원들도 리베이트를 요구할 거고 그러면 회사가 썩는다고 이유를 댔어요. 오케이 사인을 받고 나오는데 뒤에서 ‘거참 오늘 운이 안 맞는구먼’이라는 푸념이 들려오더군요.”
-30년간 그런 원칙을 지켜오느라고 힘이 많이 들었을 것 같은데요.
“리베이트를 안 주는 대신 다른 회사보다 우수하면 고객을 끌어올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리베이트를 안 줘도 우리 배를 쓰지 않고는 못 배기게 만들자는 거였죠.”
‘뒷돈 대신 서비스의 질’로 맞선다는 것이었다. 진통은 컸지만 박 회장의 경영방침은 사고도 줄이고 회사를 급성장시켰다.
-결국 정도경영을 하면 회사가 강해진다는 말씀인가요.
“경영자에게 도덕군자가 되길 바라는 건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나는 사실 장사꾼의 논리에 충실했을 뿐이에요. 어떤 게 회사의 이익에 도움이 되는지 현명한 길을 찾은 것뿐입니다.”
그의 윤리경영의 바탕에는 사실 이 같은 냉철한 경영논리가 있었다.
그의 회사엔 사시나 사훈이 없다. 표어가 무슨 필요가 있는가, 그냥 실천하면 되는 것이라는 게 그의 소신이지만 기업문화에서도 창업자의 소신을 엿볼 수 있다.
이 회사에선 설령 직원이 실수해서, 술자리에서 취중에 한 약속이라도 지킨다고 한다. 대외적으로 한 약속은 회사 전체의 약속인 만큼 손해를 보고서라도 그걸 이행한다는 것이다.
그는 7년 전 경영권을 물려주고 사실상 물러앉았다. 후임자는 전문경영인. 3명의 아들이 있지만 자식에게 회사를 물려준다는 생각은 애초 그의 머릿속에 들어있지 않았다. “왜 아들에게 회사를 물려주지 않느냐”고 묻는 사람이 쑥스러울 정도로 그의 대답은 명쾌하다.
“재산권을 누구에게 물려주든 그건 자유입니다. 하지만 무조건 회사를 자식에게 맡기는 건 ‘불공정 인사’입니다. 아니, 종업원에게는 승진 기준을 엄격하게 하면서 자기 자식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사장을 시키고 하는 게 공정한 건가요.”
-아들이 섭섭해하지 않았을까요.
“그들이 아버지 생각을 잘 알아 그렇지 않았어요. 언젠가 친구가 큰아들에게 ‘아버지 가업을 이어야지’하고 물어보더라고요. 아들이 ‘그건 아버지 회사이지 제 사업이 아닙니다’라고 대답하는 걸 듣고 속으로 ‘정신자세가 됐구먼’ 그랬죠.”
박 회장은 “어릴 때부터 아버지가 하는 걸 옆에서 지켜보면서 자연스럽게 그런 의식이 형성된 것”이라고 말했다. 큰아들은 미국에서 교수, 둘째 셋째는 다른 중소기업을 운영하고 있다.
그가 자식을 어떻게 키웠는지 알 수 있는 일화 한 토막. 87년 초 일본에 출장 중이던 그는 도쿄의 숙소에서 서울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집에 있던 큰아들이 “국세청에서 세무조사를 나왔다”고 하는 것이다. 그는 도대체 영문을 몰랐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해운회사에 대한 대대적인 내사 과정에서 빚어진 세무조사였다.
그러나 난데없는 세무조사는 국세청 직원 한사람이 장롱에서 뭔가를 발견하면서 끝났다. 미국 유학 중이던 둘째 아들이 보내온 편지였다.
‘아버님, 이곳에서 생활을 하려면 한달에 750달러는 있어야 밥이라도 먹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아르바이트를 해도 한달 600달러 이상은 힘듭니다. 그러니 제발 한달에 150달러만 보내주시면 안되겠습니까.’
불쌍한(?) 사연을 읽은 국세청 직원이 “더 이상 할 필요가 없다”고 본 것이다.
후임자 선정에도 그다운 경영관이 묻어 있다. 후임자는 평소 자신에게 가장 반대를 많이 한 사람이다.
“사장 결정에 반대를 많이 한 사람은 그만큼 회사에 대한 충성심이 강한 사람이에요. 임직원이 자기 인사에 불리할 걸 각오하고 말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죠.”
적잖은 돈을 사회에 내놓고 있는 그에게 “우리 기업이 기부하는 데 매우 인색해 보인다”고 묻자 박 회장은 “내가 뭐 많이 하는 게 있다고…”라고 손을 내저으면서도 한마디했다.
“대부분의 기업가는 ‘내가 번 것이니 내 것이다’는 생각을 하죠. 하지만 사실은 종업원 고객 소비자가 협력해 번 것이죠. 그 돈의 일부를 사회에 환원하는 것은 일종의 사회간접투자라고 할 수 있어요.”
정치학과 출신으로는 보기 드물게 사업의 길에 나선 그는 ‘정비클럽’(서울대 정치학과 출신 비즈니스맨 클럽) 회원 등 젊은 후배들을 만날 때마다 강조하는 얘기가 있다.
“젊은 기업가들은 기업을 시작할 때 정의감에 멋진 회사를 만들어보겠다는 각오를 하죠. 그러나 어느 정도 커지면 흔히 초심(初心)을 잃어버리고 구태에 젖어버리는 것 같아요.”
그가 지금도 지키려고 하는 ‘초심’은 뭘까. 그가 2년 전 펴낸 사사(社史) 겸 자서전의 제목이 그걸 짐작케 해준다.
‘손해를 보더라도 원칙은 지킨다.’
이명재기자 mjlee@donga.com
◈박종규 KSS해운 회장은◈
△1935년 서울 출생
△1961년 서울대 정치학과 졸업
△1961∼69년 한국해운공사 근무
△1969년 KSS해운 창립
△1993년∼현재 ‘바른경제동인회’ 부회장
△저서 ‘손해를 보더라도 원칙은 지킨다’(2000년)
▼'바른경제동인회'는▼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박종규 회장이 이끌고 있는 ‘바른경제동인회’는 기업인 스스로 자기개혁을 하자는 취지에서 설립된 단체다.
1993년 3월 출범 직후 이 단체가 내놓은 ‘기업인 신생활 공동선언문’은 ‘천민자본주의적 악습으로 가득 찬 한국사회와 경영풍토에 대한 통렬한 자기비판(손해를 보더라도 원칙은 지킨다)’이었다.
“우리 기업인은 산업사회로 오는 견인차 역할을 수행한 데 대해 큰 자부심을 갖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론 환경오염, 사회적 부패, 정경유착, 불공정거래, 촌지풍조 등 사회 곳곳에 타락의 물결을 범람시킨 것도 사실이다.… 이 암세포 같은 현상을 수술하지 않고서 우리는 결코 21세기 정보화사회로 넘어갈 수 없다.”
이 같은 취지에 많은 기업인들이 참여해 현재는 회원이 200여명으로 늘어나 있다.
동인회가 벌이고 있는 활동은 여러 가지지만 기본 정신은 우리 사회, 특히 경제활동의 ‘투명화’다. 신용카드를 사용하면 세금을 공제해 주는 제도는 이 단체가 거둔 대표적인 결실이다. 앞으로는 기업의 비자금을 없애는 방안을 내놓을 방침이다.
박 회장은 “정신운동이나 일회성 캠페인이 아니라 점진적이지만 실질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는 방안이라야 우리 사회의 부정부패를 막을 수 있다”고 말한다.
바른경제동인회는 적잖은 회원을 확보하는 등 많은 공감을 얻고 있지만 활동이 순탄한 것만은 아니다. 박 회장은 “한국에서 이런 운동을 하는 데에는 힘든 점이 많다”고 털어놓는다.
기업인들에게 “자기는 깨끗한가?”라는 눈총을 받는가 하면 ‘반(反)기업, 반정부’로 오해받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명재기자 mj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