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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조영남이 본 아라키전

입력 | 2002-12-25 18:38:00


올 한 해 어떤 작가의 개인전은 무슨 비엔날레니, 아트페어니 하는 백화점이나 장마당식 퍼질러 놓은 공룡전시에 눌려 기를 못 폈다. 이런 와중에 11월 서울 종로구 동숭동 마로니에 화랑의 김차섭 오딧세이와 팔판동 인화랑의 김웅 개인전, 그리고 현재 광화문 일민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아라키 노부요시 개인전은 가히 역혁명적이다(혁명진압적이다). ‘개인전은 살아있다’ ‘개인전은 영원하다’ 고 당당하게 맞선다는 얘기다.

특히 아라키는 90년대부터 느닷없이 불기 시작한 설치미술이라는 미명하에 고의적인 너절함을 창의적 위대함으로 바꿔치기 하려던 가공할 만한 키치적 음모에 평범한 사진기 한 대와 평범한 앵글만으로 일단 정지의 제동을 걸었다.

생각이나 사물을 괜히 비꼬거나 뒤틀어 버리지 않고도 얼마든지 예술혼에 접근할 수 있음을 여실히 증명해낸 것이다. 아래 위층 일민미술관에는 흑백 혹은 컬러로 된 1000장이 넘는 사진이 한결같이 흰 벽에 아무런 기술이나 장치 없이 걸려 있지만 우리가 흔히 현대미술관에서 부닥쳐야 하는 ‘이게 뭘 그린 걸까 뭘 찍은 걸까’ 하는 딜레마가 없다. 왜냐하면 우리가 매일 늘 보는 것만 찍어놓았기 때문이다. 도쿄면 도쿄에서 서울이면 서울에서 눈에 띄는 대로 그야말로 닥치는 대로 찍어댄 사진들이다. 이런 걸 왜 찍었을까 싶을 정도로 각종 음식물이나 각종 꽃술들을 가깝게 노골적으로 찍었는데 그것도 있는 걸 그대로 찍었음이 틀림없다. 인물을 찍을 때도 거기 등장하는 인물한테 이리 오시오 저리 가시오 말을 시킨 흔적이 전혀 없다. 그저 렌즈에 담기는 대로 찍어서 인화를 했을 뿐이다. 필름 값과 인화 값이 걱정될 정도다.

거기엔 여성을 찍은 사진, 그야말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홀랑 벗은 여자의 모습이 수없이 등장한다. 일본 여자는 워낙 잘 벗는 것으로 알려졌으니까 궁금할 것이 없는데 웬 한국여자들이 저토록 태연할 수가 있을까.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까탈스러운 한국 여자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벗겨놓고 찍어낸 점에 대해선 작가 아라키 노부요시 영감(62)의 인간을 다루는 능력, 좀 고급스럽게 표현해서 연출력에 경탄을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참고로 혹시 저거 돈 주고 산 여자들 아냐? 하고 비하할 수 도 있다. 하지만 그런 여자들한테도 ‘돈을 받고 벗기는 싫다’는 기본 권리가 엄연히 존재함을 명심해 둘 필요가 있다.

왜 여자의 나신을 꽁꽁 묶었느냐고 물었을 때 ‘여자의 몸과 사랑은 내 맘 대로 잡혀지는 게 아니라서 묶었다’는 작가의 변명이나 개인전을 둘러본 가수 싸이가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다 해버렸네”하는 넋두리는 모두가 정당하다.

여자의 내밀한, 수상한 부분을 작가 스스로 색물감 붓으로 개칠한 것은 외설이나 도발이라는 심의를 피해가려는 선의의 응급조치로 여겨지지만 전시장 한구석을 미성년자 제한 조치로 구분한 것은 대한민국의 옹색무쌍한 문화 현주소를 들여다보는 것 같아 안타깝다.

일본은 없다, 일본에 예술은 없다, 일본에 백남준이 같은 이가 없다 라고 평소에 으스댔던 사람들은 빨리 일민미술관으로 4000원을 내고 들어가서 독일의 최고 미술전문 출판사에서 찍은 150만원대 도록을 흰 장갑 끼고 들춰봐라. 나도 그런 생각을 싹 바꿨다. 역시 진짜 감동은 개인전에 있다는 사실도 이번 기회에 입증되었다. 조 영 남 가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