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에 봉황과 나비문신을 새긴 여인과 눈가에 화려한 문신을 한 여인
글라우디아 글렌 바라시(44)는 뉴욕 맨해튼에 있는 이벤트 기획회사에 나갈 땐 아르마니 슈트 차림이다. 고교를 졸업한 두 아이의 엄마인 그는 휴가 때면 화끈하게 변신한다. 오토바이 위에서 가죽 옷을 입고 말 갈기 같은 장식을 휘날리며 거리를 달린다.
일생의 목표였던 두차례의 대장정도 마쳤다. 한번은 미국 동부해안 도로, 다른 한번은 캐나다 동부해안 도로. 바라시씨는 ‘무엇으로 기념하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문신을 떠올렸다.
“그 전엔 내가 할 게 아니라고 생각해서 그런 충동을 한번도 느껴보지 않았거든요. 요즘은 40대 여성들 사이에 인기가 높아요. 깨끗해지고 안전해졌고요. 언젠가 해보고 싶었던 것을 이번에 해봐야겠다고 마음먹었지요.”
엉덩이 약간 앞쪽에 별이 폭발하는 문신을, 엉덩이 약간 위쪽에 은하수 문신을 차례로 집어넣었다. 그는 “아이들이 놀라운 기쁨을 주던 시기가 지나면서 갑자기 둥지가 텅 빈 느낌이 들었다”면서 “더 섹시해지고 더 즐겁게 살아야겠다는 의지를 문신으로 표현해보았다”며 활짝 웃는다. 난데없는 부인의 변신에 남편은 어떤 반응이었을까. 문신에 호의적이 아니었던 남편 셀든 허션은 콧소리를 내며 “색다른 기분이고 금단의 열매를 딴 느낌”이라고 말했다고 뉴욕타임스는 소개했다.
필라델피아 근교의 한 칼리지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제인 캐플란(57)은 나이 50줄에 접어들면서 말못할 고생을 많이 했다. 그렇지만 그는 “50은 새로 시작하기 좋은 나이”라면서 자신감을 짜냈다. 한편으로 뭔가 의지를 삼을 것이 필요했던 그는 용기를 내자는 의미에서 팔뚝에 한자로 ‘勇(용)’자를 새겨넣었다.
시애틀의 문신예술가 비빈 라종가는 “사람들은 인생의 전환점에서 문신을 하러 온다”고 말한다. 문신은 과거와 같이 탈법자까지는 아니더라도 반항자의 이미지를 풍기지만 미국에서 중년의 중산층 여성들이 과감하게 뛰어드는 것은 인생의 전환점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이다. “문신이 반항적이라고? 좋다. 내 인생도 반항적이다.”
필라델피아에서 변호사를 하는 니나 시그리(60)는 엉덩이에 ‘할머니’라는 문신을 했고 얼마 뒤엔 가슴 위쪽에 남편 이름의 첫글자를 새겼다. 그는 문신에 관해 쓴 에세이에서 “문신이란 나이가 들어가면서 즐길 수 있는 게임”이라고 표현했다. 젊은이들은 멋있는 그림이라면 몰라도 자신의 인생을 글자나 그림으로 새겨넣을 만큼 인생의 깊이가 없지 않느냐는 것이 그와 같은 ‘노년층 문신파’의 주장이다.
2년 전 나이 마흔이 된 캘리포니아의 마르티나 파우시는 다니던 통신회사를 그만두고 섹스 세라피스트가 되기 위해 대학원 과정에 등록하면서 문신을 했다. 등 전체에 날개 달린 요정을 새겨넣었다. 그는 “나도 이젠 날개를 달았다”면서 “날개가 있으니 힘이 난다”고 말했다. 40대 후반의 어머니와 20대의 딸은 쌍이 되는 그림을 새겨넣은 뒤 ‘세대 차이 위로 놓은 다리’라고 표현했다.
문신은 한때 남성들의 영역이었다. 여성쪽으로 번지게 된 것은 브리트니 스피어스, 크리스티나 아귈레라와 같은 가수들, 찰리즈 테론 같은 배우를 포함한 스타들이 먼저 불을 지폈기 때문. 요즘은 한시간에 75∼150달러짜리 문신미용실 체인도 생겼다. 의사들은 감염에 대한 우려를 누그러뜨리지 않고 있지만 종전에 비해 업소에 대한 위생기준이 강화됐다는 평가다. 가정에서 스스로 문신을 새기는 자동소독장치도 팔리고 있다. 어린이들이 며칠 뒤 지울 수 있는 문지르는 문신도 편의점에 나와 있다.
유명한 바비 인형이 세상에 태어난 지 40년을 기념해 1999년 제조회사 마텔이 내놓은 바비는 배에 나비 문신을 하고 있었다. 40대 여성들 사이의 문신 유행을 반영한 상징물이었다. 작년 미국의 한 통계잡지가 성인 1009명에게 설문조사를 한 결과 문신을 갖고 있는 비율이 남성 13%에 여성은 18%였다. 40∼64세는 평균 9%가 문신을 갖고 있었다. 샌프란시스코의 ‘타투 스튜디오’ 주인 탄자 닉스는 “최근 40대 이상의 여성이 부쩍 늘어 하나의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40대 이후의 여성들이 문신을 해넣는 이유 중 하나는 남편 놀래주기. 애교형 문신으로는 발목에 꽃을 그려넣거나 등 아래쪽에 나비를 새겨넣는 게 인기다.
뉴욕=홍권희특파원 koni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