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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열규 교수의 웃음의 인생학]유머는 위기의 크기에 비례

입력 | 2002-12-26 18:23:00


죽음의 위기는 더 없이 좋은 유머가 생겨날 터전이다. 유머의 미덕은 그것이 태어난 모태인 위기의 크기에 비례해서 증폭한다.

그러나 죽음 이외에도 삶에는 크고 작은 위기가 있기 마련이다. 또 갈등도 빚어지기 일쑤다. 이들도 역시 유머를 위한 좋은 계기가 된다. 그럴 수 있는 사람일수록 그 자신의 삶을 위한 훌륭한 관리자가 된다.

그 본보기를 위해서 왕년의 독일 재상이던 비스마르크의 일화를 들여다보자. 그의 부관이 물었다.

“각하께선 화가 나면 어떻게 하시는지요?”

“가만, 내가 화가 난다?”

계면쩍은 듯이 뜸을 들인 다음, 재상은 말을 이었다.

“글쎄 내가 화나면 휘파람을 불걸, 모르긴 해도.”

뒷짐을 지고 서성이던 재상은 남의 이야기하듯이 결론을 맺었다.

답이 수상해서 부관이 따지듯 말했다.

“하지만 저는 각하께서 휘파람 부시는 걸 단 한 번도 들은 적이 없는데요?”

“그야 그럴 테지. 이 세상에 감히 나를 화나게 할 게 뭐가 있겠나?”

바로 이거다. 이 엄청난 인간 긍지 그리고 정신적 여유야말로 삶을 유머로 대할 마음바탕이 된다. 쉽게 화내고, 간단히 겁먹고, 이내 당황하고 하는 사람에게서 유머는 바랄 수 없다. 그런 인물을 한국에서 찾아보자. 대원군이 한창 세력을 떨치고 있을 때 어느 시골 선비가 권력자를 찾아 왔다. 뵙자마자 큰절을 정중하게 했다. 대원군은 책을 읽는 척하고는 반응을 보이질 않았다. 자신을 못 본 줄 알고 선비는 또 다시 절을 했다.

“네 이놈, 내가 송장이라더냐? 난데없이 두 번 절이라니!”

선비는 싱긋하고 기지를 발휘했다.

“아니옵니다. 처음 것은 뵙는 절이옵고 둘째 것은 물러나는 절이옵니다.”

필자도 이제 이 유머를 끝으로 독자 여러분 앞에서 물러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