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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사회]동북아시아 공동의 집을 향하여

입력 | 2002-12-27 18:04:00


한국과 일본이 서로 상대국 배우가 연기하는 합작영화 ‘안중근과 이토 히로부미’를 만들 수 있을까.

독일과 프랑스가 두 언어로 음성다중 텔레비전 방송을 만들고 있듯이 한국과 일본, 일본과 중국도 그럴 수 있을까.

이 책은 재일 한국인 2세로, 한국 국적자로는 최초로 도쿄대 교수가 된 강상중씨가 50년 후의 동북아시아를 내다보며 일본 중의원 의원들에게 던진 대담한 제언, 즉 ‘동북아시아 공동의 집(Common House)’의 구상을 담고 있다. 강 교수가 보는 동북아는,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의 표현을 빌리면 ‘내셔널리즘이라는 유령이 배회하고 있는’ 상황이다.

일본에서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의 내셔널리즘적 역사교과서를 선택한 학교는 드물었고 그들의 운동은 패배했다. 그러나 이 교과서가 지역의 교육위원회에서 아주 근소한 차로 채택되지 않은 곳이 많았다는 점에서 일본의 풀뿌리 네오내셔널리즘은 여전히 우려할 만한 수준이다.

중국 정부가 파룬궁이라는 기공집단에 그토록 신경을 쓰는 이유는 뭘까. 그건 말할 것도 없이 내셔널리즘이 공산당과 중국 국가가 제어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 민중 사이에 퍼질 경우 예측할 수 없는 사태가 발생할 것임을 중국의 지도자들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뿌리깊은 반일감정은 언급할 필요도 없다.

50년 앞의 평화와 공영의 동북아시아를 위해 일본은, 그리고 한국은 무엇을 할 것인가.

강 교수는 한반도의 영세중립화를 제안한다. 세계에서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이라는 네 강대국이 지정학적으로 접해 서로 각축을 벌이는 곳은 한반도말고는 없다. 북한이 내부에서 해체돼 붕괴되는 일은 없을 것으로 보이지만 이런 일은 바람직하지도 않다. 2000만명이 넘는 인구가 유민이 돼 중국으로, 그리고 휴전선과 동해를 넘어 남한과 일본으로 흘러들 때 발생할 최악의 사태는 어떤 식으로든 막아야 한다. 북-일교섭 등을 진전시켜 북한을 끌어안아야 한다.

그는 또 동북아시아에서 엔화의 기축통화 역할을 제안한다. 물론 엔의 힘과 국제적 신용이 10년 전에 비해 크게 떨어진 상황에서 우선 일본 금융기관의 불량채권이 처리되지 않으면 안 된다. 또 엔의 역할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일본의 경제가 근본적으로 개혁돼 일본이 미국을 대신하는 수입대국이 돼야 한다. 그러나 수입대국이 되려고 하면 일본에 많은 실업자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데 과연 이런 고통을 감내할 준비가 돼 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강 교수는 중국위협론에 대해 현재로선 그다지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다. 중국은 국내의 분열요인에 대해서는 무력제재도 불사할 만큼 단호하지만 국제적으로는 평화적인 현상유지를 원하고 있다.

강 교수의 연설 뒤에 붙은 일본 중의원 헌법조사회 의원들과의 질의응답도 상당히 수준 높은 내용을 담고 있다. 2001년 3월에 이뤄진 것이라서 약간 시기적으로 뒤늦은 감이 있지만 한중일 관계의 미래를 전망하는 데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송평인기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