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에이스 임선동과 ‘야인’ 조성민의 인생 유전이 흥미롭다.
92학번 동기생으로 내년이면 30줄에 접어드는 이들은 서울에서 고교를 다닌 것을 빼곤 닮은 데가 거의 없는 15년 라이벌이다. 덕지덕지 여드름에 푸근한 아저씨 인상인 임선동은 휘문고-연세대, 영화배우 뺨치는 외모와 말솜씨를 자랑하는 조성민은 신일고-고려대를 나왔다.
처음엔 임선동이 앞서가는 듯했다. 89년 고교 1년생으로 봉황기 우수투수에 뽑히며 주목을 받았던 그는 LG의 1차지명을 받아 91년 당시 최고액이었던 해태 선동렬 연봉의 5배에 이르는 계약금 5억원에 입단 제의를 받았다. 반면 조성민은 고교 3학년 여름 뒤늦게 봉황기 우수투수상, 홈런상과 가을에 황금사자기 우수투수상을 휩쓸었지만 다른 서울팀인 OB는 이미 경기고 투수 손경수를 지명하고 난 뒤였다.
이게 조성민에겐 전화위복이 됐다. 대학 졸업반인 95년 국가대표 에이스를 다퉜던 이들은 자신들보다 한수 아래로 평가됐던 동기생 박찬호의 LA다저스 입단에 자극을 받아 일제히 일본프로야구 진출을 모색했다.
조성민으로선 걸릴 게 전혀 없었다. 국내 지명 구단도 없었고 병역문제마저 해결된 상태였으니 빙그레의 지명을 받지 않아 떠났던 박찬호보다도 훨씬 자유로운 몸이었다.
반면 임선동은 골리앗을 상대로 한 길고 외로운 싸움을 벌여야 했다. 졸업후 1년을 실업팀에서 썩으며 서울지법 남부지원에 LG를 상대로 ‘지명권 효력정지 및 방해금지 가처분신청’을 내는 초유의 법정싸움을 시작했다. 임선동은 소송에선 이겼지만 LG와 담합한 다이에로부터 입단을 거절당했고 법원의 조정에 따라 이듬해 LG에 입단한 뒤 2년후 현대로 팀을 옮겼다.
마침내 조성민이 우위에 섰지만 이 또한 시작에 불과했다. 조성민은 입단 3년째인 98년 전반기에만 7승을 올리며 요미우리의 에이스급 투수로 성장 가능성을 보였지만 올스타전에서 팔꿈치 부상을 당했고 이후 수술과 재활을 오가는 좌절을 겪었다. 이때 만난 게 ‘만인의 연인’이었던 톱스타 최진실. 하지만 조성민의 시련은 끝나지 않아 지금 결혼 2년만에 파경을 겪고 있다. 또 국내 야구로 복귀하려는 꿈도 규약상 내년 지명을 거쳐 내후년 시즌에야 가능하다.
반면 2년간 LG와의 불편한 동거를 끝낸 임선동은 99년 현대 이적후 1승도 올리지 못하다가 2000년 들어 일약 18승을 거두며 공동 다승왕에 오르는 인생 역전에 성공했다.
인생은 정말 다람쥐 쳇바퀴처럼 돌고도는 모양이다.
장환수기자 zangpab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