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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주기자의 건강세상]女 성기능장애와 행복

입력 | 2002-12-29 17:20:00


최근 서울 광화문 지하도에 ‘우리 집에 왜 왔니?’라는 포스터가 나붙었다. 글자 옆에는 성조기(星條旗)가 있다.

이런 상황 때문인지 요즘 언론에서는 ‘안보 불감증’이라는 말이 보이지 않는 날이 드문 듯하다.

그런데 동아일보 헬스팀장으로서 필자는 불감증이라는 단어가 영 눈에 거슬린다. 요즘 언론에서는 안전 불감증, 도덕 불감증, 과민성 불감증(방송 종사자들이 앞다퉈 자극적인 것을 추구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 등 ‘불감증(不感症)’이 포함된 말이 너무 많이 등장한다.

이 불감증은 사실 이런 낱말에 붙을 단어가 아니다. 국어사전은 첫 번째 뜻으로 ‘여자가 성교할 때 쾌감을 느끼지 못하는 증세’, 두 번째 뜻으로 ‘감각이 둔한 성질’이라고 설명했다. 따라서 안보 둔감증, 안전 무시증 등으로 쓰는 것이 더 좋을 듯하다.

불감증은 남성 위주의 용어이기도 하다. 부부관계의 문제를 아내의 마음에 문제가 있다며 은연 중에 떠넘기면서 사용해온 말이다. 그래서 요즘에는 의학계에서도 이 말을 쓰지 않는다. 대신 여성 성기능 장애라고 부른다. 원인이 모호한 마음의 병으로 보다가 적극적으로 치료가 필요한 ‘몸의 병’으로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필자가 2000년 국내 신문 가운데 처음으로 여성 성기능 장애를 특집기사로 다뤘을 때에 상당수 남성들이 언짢아했다. 점잖은 신문에 어떻게 이런 내용을 게재할 수 있느냐고 항의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그때까지 남성 성기능 장애에 대한 특집기사를 몇 번 썼지만 이에 대한 항의는 한 마디도 듣지 못했다.

여하튼 여성 성기능 장애는 △성욕이 생기지 않거나 성행위를 혐오하는 성욕 장애 △질(膣)의 윤활작용이 원활치 못하고 성기의 감각이 둔한 성흥분 장애 △오르가슴에 도달하지 못하는 극치감 장애 △성교통, 질경련, 평시 통증 때문에 성행위를 기피하는 통증 장애 등 4가지로 분류된다.

여성 성기능 장애도 남성의 장애와 마찬가지로 심리적 이유나 신체적 이유로 생긴다. 특히 폐경기 여성은 성욕을 일으키는 남성호르몬이 줄어들어 성욕 장애가 많이 생긴다. 젊은 여성은 살을 빼려고 이뇨제를 먹을 경우 질 점막이 말라 성감이 줄게 된다.

상당수 여성은 남편과의 대화나 이해로 해결할 수 있다. 그렇지 못하면 의사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다. 비아그라나 유프리마 등의 약이 남성 성기능 장애를 치료하듯 여성 성기능 장애도 호르몬제나 혈관확장제 등으로 충분히 치료할 수 있다.

여성 성기능 장애는 어느 한 부분에 문제가 생겨서 나타난 장애일 따름이다. 21세기는 ‘삶의 질(QOL)’이 중요한 시대다. 삶의 질을 개선하고 행복을 추구하는 노력은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stein3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