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승민이의 예방접종을 위해 보건소에 갔을 때의 일이다. 접종을 마치고 체중계에 아기 몸무게를 재어보니 5.3㎏였다.
아내는 “다른 두 달 된 아기는 벌써 6㎏이 넘었는데 생각보다 승민이는 안 컸네”라고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때 한 젊은 여자가 웃으면서 다가오더니 “두 달 된 아기치고는 작은 편이네요”라고 말을 걸었다.
그녀는 “혹시 무얼 먹이세요”라고 물었고 아내는 “모유 먹이고 있어요”라고 대답했다. 그녀는 “그럼 모유가 부족해서 그런 거예요. 분유를 한 번 섞어 먹여보세요”라면서 새로 나온 한 분유회사 제품을 꺼냈다. 그녀는 이 회사의 영업사원이었다.
그녀는 한참 제품 설명을 하더니 각종 분유와 이유식 샘플을 한아름 안겨줬다. 세상에 공짜를 마다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마음 한쪽은 씁쓸했다.
승민이가 한 달 전 엄마 젖을 거부할 때 우리 부부는 어떤 분유를 선택할지를 두고 심각하게 고민한 적이 있다. 분유회사마다 성분 표기 양식이 달라 한눈에 비교하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표까지 만들어가면서 각 회사 제품의 성분과 함량을 비교 분석해 보았다.
그때 내린 결론은 분유 제품들이 조금씩 다른 점이 있긴 하지만 결국은 대동소이하다는 것이었다.
특별히 월등한 제품이 없는 상황에선 마케팅과 영업력의 차이가 시장점유율을 좌지우지하기 마련이 아닌가. 각 분유회사들이 홍보에 열심일 뿐만 아니라 여기저기서 다양한 샘플 공세를 펼치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아내가 다닌 병원에서는 퇴원할 때 산모에게 분유를 한 통씩 나눠주었다. 산후조리원에서는 아예 산모들을 모아놓고 분유회사 영업사원의 설명회를 갖기도 했다. 육아박람회는 각 회사의 샘플 뿌리기 각축장이나 다름없고 심지어 보건소에서까지 초보 엄마들을 공략한다.
문제는 이런 샘플 공세가 은근히 ‘분유 먹이기’를 강요한다는 점이다. 어떤 회사는 얼마나 홍보를 잘했는지 그 회사 제품을 먹이려고 아내의 친구는 모유까지 끊는 경우도 있었다.
얼마 전 대한가족보건복지협회 주최로 열린 엄마 젖 먹이기 증진을 위한 간담회에서도 국내 모유 수유율이 10%로 유럽(70%), 일본(50%) 등에 비해 현저히 낮은 이유는 분유 광고의 영향이 크다는 주장이 나온 바 있다. 특히 분유 광고를 접했을 때 단계별로 먹이는 분유에 비해 모유의 영양이 부족할 것 같다고 생각하는 주부가 49%나 됐다는 것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모유 대체식품 광고를 금지하고 있는 반면 국내에선 형식적인 규제에 그쳐 아쉽다.
우리 집 찬장 두 칸에는 이렇게 받은 분유 샘플들이 빼곡이 채워져 있다. 버리기 아까운 분유 샘플들은 지금 아내가 잘 먹고 있다.이진한기자·의사 liked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