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기 맥심배 입신영승최강전에서 반상대결을 벌이는 루이나이웨이 9단(오른쪽)과 장주주 9단부부.김동주기자 zoo@donga.com
“남편이 이겼다.”
이 말에 대국장 밖에서 기다리던 한국기원 관계자와 취재진들이 우르르 대국장 안으로 몰려 들어갔다.
28일 서울 한국기원내 바둑TV 스튜디오에서 열린 제4기 맥심배 입신연승최강전 결승 1국. 루이나이웨이 9단과 장주주 9단 부부의 공식기전 첫 대결로 관심을 모았던 이 대국에서 장 9단은 214수만에 백 불계승을 거뒀다.
방금 전까지도 반상에서 피튀기는 대마싸움을 벌였던 루이 9단과 장 9단은 금세 다정한 부부로 돌아와 복기를 하고 있었다.
보통 승자에게 소감을 묻지만 이번엔 루이 9단에게 먼저 패배의 소감부터 물었다.
“바둑 둘 때는 부부라는 의식을 안하고 양보없이 두죠. 초반엔 유리했는데 중반에 바꿔치기를 잘못해 집이 부족해졌어요. 그런데 지고 난 뒤의 아픔은 훨씬 덜하네요.”
패배하면 바둑판이 눈앞에 어른거려 잠을 못 잘 정도로 승부욕이 강한 루이 9단이지만 남편한테 패배한 일은 그렇게 아프진 않은 모양이다.
마침 이날은 루이나이웨이 9단의 생일. 장 9단에게 “생일 선물은 못해줄망정 바둑까지 이기느냐”고 농담을 던지자 루이 9단이 “제가 지금까지 생일에 둔 바둑에선 전부 졌던 징크스가 있다”며 남편을 두둔하고 나섰다.
루이 9단과 함께 98년 한국으로 건너온 장 9단으로선 이번 결승전이 첫 우승을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 국수전 우승, LG정유배 준우승 등 화려한 이력을 쌓은 루이 9단에 비하면 남편인 그가 더 우승에 목말라있다.
루이 9단에게 그런 이유 때문에 봐준 것 아니냐고 슬쩍 묻자 “(결승전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 2, 3국 남아 있다”며 승리의 의지를 내비친다.
루이 부부는 내년 초 자서전을 발간한다. 루이 9단과 장 9단이 바둑을 배울 때부터 한국에 올 때까지의 이야기를 각각 집필해 두 권의 책으로 낸다.
루이는 자서전에서 “한국에 온 뒤 오전 10시 기원으로 출근해 오후 7시 퇴근하는 틀에 박힌 생활을 하고 있지만 우린 바로 이런 생활을 원했다. 미국과 일본을 떠돌면서 바둑 둘 상대가 없어 우리끼리 바둑을 둬야할 때에 비하면 다른 많은 기사와 바둑을 둘 수 있는 새로운 날들이 활짝 열렸다. 하얀 쌀알까지 바둑알처럼 보일 만큼 머릿속이 온통 바둑 생각뿐이다”라고 적고 있다.
루이 부부는 누가 우승자가 되던, 이번 대회 우승과 준우승 상금을 합쳐 1700만원을 챙기게 된다. 평소 돈 관리는 누가 하냐는 질문에 “한국기원에서 상금을 넣어주는 통장이 남편 것만 있다. 남편이 자기 쓰고 싶을 땐 마음대로 쓰지만 내가 달라고 할 때 안주는 경우도 있다”며 곱게 눈을 흘겼다.
이제 루이 9단의 한국말 실력은 일상적 의사소통에는 아무 문제가 없을 정도로 늘었다.
루이 9단은 자서전에서 “지난 3년간 한국말이 빨리 늘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우리가 바둑이라는 세계 공통어로 살아가는 바둑기사이기 때문이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10월부터 경희대 국제교육학원에서 한국어 수업을 받으면서 급속히 실력이 늘었다.
루이 9단은 바둑을 빼놓고도 한국 생활이 너무 좋다고 한다. 일본에서 3년간 아파트에 살 았을 때는 인사를 해주는 이웃이 한 명도 없었지만 한국에선 모르는 사람도 ‘바둑?’ ‘중국사람?’이라는 말을 건네며 환한 미소를 건넨다.
“김치가 제일 좋아요. 외국 나가면 김치 생각에 빨리 한국에 돌아오고 싶을 정도로….”서정보기자 suhcho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