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중풍 환자들 가운데 우울증에 빠지는 환자가 많다.
마비나 언어 장애 같은 후유증이 남아서 우울할 수도 있겠지만 뇌의 손상에 의해 우울증이 유발되기도 한다.
뇌중풍 후 우울증은 서양에서 약 40% 정도 나타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필자가 조사한 바로는 이보다 적어 20% 정도이다.
그런데 최근 우울증은 뇌중풍의 결과일 뿐 아니라 원인일 지도 모른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미국 존스홉킨스대의 라르슨 교수팀은 뇌중풍에 걸린 적이 없는 1703명을 13년 동안 추적한 결과 우울증이 있던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뇌중풍에 걸릴 위험이 2.6배 높다고 보고했다.
일본 오사카대의 오히라 교수팀도 901명을 10년 간 추적한 결과 우울증이 있던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뇌경색(혈관이 막히는 뇌중풍)에 걸릴 확률은 2.7배, 뇌출혈(혈관이 터지는 뇌중풍)에 걸릴 확률은 1.9배 높다고 보고했다.
그러나 아직 풀리지 않은 의문점이 많다. 어떻게 마음의 병인 우울증이 뇌혈관 질환인 뇌중풍을 일으킬 수 있는가?
한 가지 가능한 설명은 우울증에 걸린 사람의 혈소판은 정상인보다 응집되는 정도가 높다는 사실이다. 혈소판이 응집되면 피가 굳어져 피떡(혈전)이 생기며 혈전은 뇌혈관을 막아 뇌중풍을 일으킬 수 있다.
그러나 다른 주장도 있다. 뇌 자기공명영상촬영(MRI)을 해 보면 뇌중풍의 병력이 없더라도 일반적으로 우울증 환자는 우울증이 없는 사람에 비해 뇌혈관 질환이 더 많다.
다만 막힌 혈관이 작거나 손상된 뇌의 부분들이 별로 중요치 않은 곳이므로 반신마비와 같은 뇌중풍 증세를 경험하지 않았을 뿐이다.
즉 나이든 사람이 우울증이 생기는 것은 마음의 병이 아니라 뇌혈관이 막힌 데 따른 2차적 증세일 수도 있다.
결국 라르슨이나 오히라가 조사한 우울증 환자 중 많은 수는 실제로는 뇌혈관 질환을 가진 사람들이었을 것이고 이런 사람들은 분명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나중에 뇌중풍에 더 잘 걸릴 것이다. 이런 점에서 우울증은 뇌중풍의 진정한 원인이 아닐 수도 있다.
우울증이 뇌중풍의 진정한 원인이든 아니든 나이가 들어 마음이 우울한 사람이 나중에 뇌중풍에 더 잘 걸린다는 사실은 맞다. 우리가 우울한 기분에서 벗어나야 할 이유는 많은 것이다.
울산대 의대 서울아산병원 신경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