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미월드공주선발대회’에서 대상을 받은 문예은양./신석교 기자
‘미미’는 국내 최초 패션인형이다. 82년 ‘라라’란 이름으로 출시됐다가 1년 만에 ‘아름다워라 아름다워라(美美)’란 뜻으로 개명했다. 이마트 집계에 따르면 국내 패션인형 시장의 40∼60%를 점유하고 있다. 21년간 2000만개가량의 미미가 팔려나간 것으로 제작사는 추산한다. 탄생 당시 키 21㎝, 머리둘레 11㎝였던 체형은 20여년을 거치며 키는 7㎝ 늘어나고 머리둘레는 0.5㎝ 줄어든 날씬이로 변했다. 변하지 않은 것은 가장 단가가 싼 자투리 천으로 팬티를 만든다는 사실 뿐이다.
미미에 얽힌 사연과 비밀을 추적했다.
● 미미의 용도
7세인 A양은 최근 친척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 공포에 질린 A양은 수일 동안 가해자를 털어놓지 않았다. 서울 한 복지관 놀이치료사 J씨(여)가 미미 인형을 A양에게 보여주며 인형 목소리를 가장해 물었다. “안녕. 난 미미야. 너의 가장 친한 친구야. 누가 너를 아프게 했니? 나에게만 말해 줘.” A양이 입을 뗐다. “나 여기(미미의 성기 부분을 가리키며)가 너무 아파. 삼촌이 날 아프게 했어. 삼촌이 무서워. 미미야, 너만 알고 있어야 해. 삼촌이 날 때릴지도 모르니까.”
맞벌이 부모 밑에서 홀로 큰 부산의 한 중학교 3학년 B군(15)은 미미 인형을 포함해 50여개의 여자 인형을 갖고 있다. 학교에서 거의 한마디도 하지 않는 내성적인 B군은 5세 때부터 인형을 모으기 시작했다. B군은 학교생활이나 친구관계에 좌절하면 제 방에 틀어박혀 ‘누나이자 동생이자 여자친구’인 미미와 대화하며 외로움을 달랜다. B군은 2대 독자다.
K양(8·서울 성북구 안암동)은 부모의 싸움 장면을 목격하면 방에 들어가 인형놀이를 통해 싸움을 재현한다. 부모가 무섭게 싸우는 모습도 인형 놀이를 통해 다소 즐겁고 재미있게 ‘재해석’하며 심적 충격을 누그러뜨리는 것 같다고 K양의 부모는 말했다.
L군(8·부산 부산진구 당감동)은 여동생처럼 여기며 밥 먹을 때나 잘 때나 함께 했던 미미 인형을 이사할 때 어머니가 ‘더럽다’며 버린 것을 뒤늦게 알고 미미를 찾아 가출했다. 가출신고를 냈던 가족은 경찰의 탐문 수사를 통해 같은 날 밤 12시 무렵 예전 살던 동네의 이웃 할머니 집에서 울고 있던 L군을 발견했다.
서울 S초등학교 3학년 C군(9)은 6학년인 누나와 싸우고 나면 누나의 애장품인 미미 인형의 머리털을 쥐어 뽑고 엉덩이를 때리며 대리만족을 얻는다.
서울 S초등학교 3학년 4반 33명을 지난달 27일 조사한 결과 여학생 15명 중 6명이, 남학생 19명 중 2명이 미미 인형을 갖고 있다고 대답했다. 같은 날 부산 K여고 2학년 3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30명이 ‘미미 인형을 가지고 논 적이 있다’고 대답했으며 그 중 8명은 ‘지금도 가지고 논다’고 했다.
일부 합숙형 단식원에서는 미미 또는 바비 인형을 나눠주며 여성들에게 ‘심기일전’을 독려한다.
● 미미의 유혹
미미 인형 제작사에 매주 도착하는 수십통의 엽서나 e메일에는 미미를 둘러싼 아이와 어머니의 시각차가 드러난다. 다음은 아이들이 보낸 글. ‘미미 머리를 샴푸로 감겨주고 린스한 후 빗어주고 말리면 헝클어지지 않아요.’ ‘파마한 미미도 만들어 주세요.’ ‘목이 너무 굵어요.’ ‘사랑표(하트 모양을 일컫는 듯) 목걸이를 만들어 주세요.’ ‘장나라 닮아서 너무 좋아요.’
반면 어머니들이 보내온 글. ‘액세서리를 따로 구입하게 해 주세요. 이것 때문에 인형을 통째로 사 줄 수는 없잖아요?’ ‘액세서리가 너무 작고 많아 자주 잃어버려요. 수납공간을 마련해 주세요.’ 같은 장난감이라도 엄마들은 남아용 로봇인 ‘슈퍼화이어다그온’이 ‘화이어다그온’보다 진화한 ‘완전히 다른’ 로봇이라며 또 사주면서도 왜 ‘요리파티 미미’와 ‘쇼핑 미미’와 ‘새근새근 꿈나라 미미’는 ‘똑같은 미미’라고 여기는지 여아들은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는 데 문제의 발단이 있다.
어머니들은 “‘공주 미미’에도 화장대가 있는데 왜 ‘신부 미미’의 화장대를 또 사자고 조르느냐”며 나무란다. 아이는 “공주의 화장대와 신부의 화장대는 다르다”며 반항한다. 아이를 유혹하는 것은 ‘기능’으로서의 화장대가 아니라 화장대 위에 놓인 1㎝ 길이의 립스틱이다. 아이에겐 보통 립스틱과 뚜껑이 열리는 립스틱은 다르며, 칫솔과 전동칫솔이 다르고, 일반 의자와 등받이 각도가 조절되는 의자는 다르다.
제작사는 아이들의 이런 본능을 파고든다. 어머니들이 “조잡스럽기 짝이 없고 청소하면 절반은 잃어버린다”고 불평하는 2㎝ 미만의 슬리퍼, 헤어젤, 참치통조림, 보석반지, 김밥, 당근, 개 우유병, 비누, 헤어클립, 향수병, 보석이 달린 허리띠, 신용카드 등 디테일에 아이는 집착한다. 제작사는 싱크대 문짝과 서랍이 열리도록 보완해 이런 ‘조잡스러운’ 물건들을 보관할 공간을 개발함으로써 어머니들을 진정시키려 한다.
여아들이 영원히 선호하는 테마는 ‘결혼’과 ‘공주’다. 제작사는 이 과정을 세분해 상품화함으로써 끊임없이 다른 시리즈를 만들어 낸다. ‘결혼’만 갖고도 ①거울 앞에서 웨딩드레스와 이브닝드레스를 고르고(웨딩숍 미미) ②머리를 하며(미용실 미미) ③신부화장을 하고(신부화장 미미) ④신혼여행 때 입을 옷들을 옷장에 걸어놓으며(옷장 미미) ⑤침대에 누워 결혼 후 미래를 생각하고(침대 미미) ⑥목욕을 하며 설레임과 기대를 갖고(신부의 집 미미) ⑦신랑과 함께 하는(신랑신부 미미) 등 7개 이상의 시리즈가 출시됐다.
제작사는 아래턱이 넓고 건장하게 생긴 미미의 남자친구 ‘토토’의 판매고가 저조하자 꽃미남형으로 얼굴을 바꾸는 작업을 진행 중이며, 최근 국내 유명 패션디자이너 K씨와 만나 미미 의상디자인을 타진했다.
● 미미의 비밀
골상 전문가인 서울교육대 미술교육과 조용진 교수는 한국의 미미와 미국의 대표적인 패션인형인 바비의 얼굴과 골격을 비교분석했다. 조 교수는 미미의 얼굴을 한국인의 80%가 속한 ‘시베리아계’가 아닌 ‘동남아계’로 판정했다. 얼굴의 좌우길이 대 앞뒤길이가 1:1.23(바비인형 1:1.36)으로 동양인 평균치인 1:1.3을 초과하는 비정상적 ‘옆짱구’라는 것. 미미의 이마는 생후 1년 미만의 신생아에 가깝다. 또 미간∼코끝 길이(중안·中顔)를 100으로 볼 때 코밑∼턱 길이(하안)는 86으로 바비 인형(121)에 비해 턱이 매우 작은 것으로 나타났다. 86은 인간의 골격 구조상 가능한 최소 턱 길이. 또 눈 좌우길이를 100으로 봤을 때 눈의 상하길이(안장폭비·眼長幅比)가 66.5로 동양인 평균(27)보다 3배 가까이 긴 ‘세로눈’으로 조사됐다. 인류로서는 불가능한 수치. 입 길이도 5.68㎜로 바비 입(9.92㎜)의 절반 수준이다.
조 교수는 “북방계인 바비인형에 비해 남방계인 미미인형은 인체 비례에는 맞지 않는 관념적 얼굴”이라며 “성적 매력(바비)보다는 귀여움(미미)을 선호하는 것은 미술사적으로 볼 때 사회가 유약해지는 시대 말기(末期)에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진단했다. 그리스 말기(헬레니즘), 조선 후기에도 공통된 현상이 나타났다는 것.
바비와 미미의 키(279㎜)는 같다. 그러나 젖꼭지 높이는 미미(210㎜)가 바비(198㎜)보다 높아, 바비는 성숙한 여성의 다소 늘어진 가슴을, 미미는 미성숙한 여성의 달라붙은 가슴을 갖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미미가 손등을 앞으로 보이고 있는데 반해 바비가 손바닥을 보이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 여성은 윗팔뼈가 성장함에 따라 비틀리면서 점차 손바닥이 앞으로 드러나게 된다. 한편 다리는 미미(170㎜)가 바비(164㎜)보다 길다.
서울 압구정동의 한 성형외과 원장에 따르면, 미미의 얼굴을 요즘 인기있는 스타일로 성형하는 데 드는 총비용은 890만원이며 수술이 필요한 세부 사항은 다음과 같다.
①눈의 가로에 비해 세로가 지나치게 길기 때문에 눈의 좌우를 째는 수술(140만원〓안쪽 70만원+바깥쪽 70만원) ②콧날개가 없는 코를 입체적으로 세워주는 수술(250만원〓실리콘 등으로 콧등을 올리는 데 180만원+귀 뒤에서 떼어낸 연골로 코끝을 올리는 데 180만원. 두가지 수술을 함께 할 경우 110만원 할인) ③작은 입술을 부풀리기 위해 합성피부물질인 레스틸렌을 입술에 주사(80만원) ④볼 살이 많으므로 입 안쪽을 절개, 메추리알 크기의 볼살주머니(지방덩어리) 제거(150만원) ⑤턱이 작으므로 고어텍스 등을 턱뼈 위에 얹는 수술(250만원) ⑥소심한 인상이므로 수술에 대한 공포를 자각하지 못하게 만드는 수면마취(20만원 추가). sjd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