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한국 영화계는 그 어느 때보다 활기 넘치는 한 해를 보냈다.
투자자본의 활발한 유입으로 무려 90편이 넘는 한국영화가 제작되었고, 자국영화의 시장점유율도 2001년과 대동소이한 46%를 기록해 여전히 한국영화의 상대적 강세를 유지했다.
‘취화선’과 ‘오아시스’는 칸과 베니스에서 각각 주요 상을 거머쥐었고, 뛰어난 상업적 경쟁력을 과시한 ‘엽기적인 그녀’ ‘달마야 놀자’ ‘가문의 영광’ 등은 영화산업의 본토 할리우드에 만만치 않은 가격으로 리메이크 판권을 판매함으로써 한국 장르영화의 경쟁력을 제고시켰다.
또한 쉬지않고 이어지는 멀티플렉스 건설붐이 폭발적으로 스크린수의 증가를 불러와, 스크린수 1000개 시대를 열었다. 여기에 힘입어, 잠재관객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임으로써 한국영화 역사상 처음으로 1억명의 관객을 돌파한 한 해로 기록되었다는 잠정적 보도도 있었다.
한국영화 산업화의 위상은 이렇듯 가파른 속도로 올라가고 있는 중이다.
물론 가시적 성과 이면에, 2002년은 많은 숙제를 한국 영화인들에게 남겨준 해이기도 했다. 순 제작비와 마케팅비의 급상승으로, 제작편수는 늘었으나 평균 수익률은 오히려 하락했다. 투자 대비 수익률이 현저히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물론 여기엔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을 비롯한 대작영화의 흥행참패가 큰 영향을 미친 것이 사실이나, 현업에 종사하는 영화인의 한 사람으로서 비용상승률에 비해 수익률이 못 따라가고 있음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 철저한 비용관리와 상업적 경쟁력을 지켜낼 수 있는, 보다 창의적이고 합리적인 제작시스템의 창출이 급선무라고 생각한다.
새해엔 영화진흥위원회 주도로 예술영화전용관을 지정해 1월부터 본격적으로 운영될 계획이라고 한다. 이는 상업영화의 틈바구니 속에 비명횡사하고 마는 소위 예술영화들의 숨통을 어느 정도 터주는 역할을 할 것이라 여겨진다.
그리고 6월부터 영화계의 오랜 숙원 사업이던 영화관 입장권 통합전산망이 시험운영에 들어갈 계획이라고 하니, 한국 영화산업의 과학화, 투명화에 한 걸음 다가설 수 있기를 바래본다. 2003년은 특히 투자, 배급사 간의 판도변화에 많은 지각변동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바, 어쨌든 보다 진일보한 시장구조가 이루어지는 쪽으로 기대를 걸어본다.
2002년의 사회, 경제, 정치의 변화를 매스미디어는 세대교체, 중심세대의 이동 등이란 말로 진단하기도 했다. 섣부르게도 세대혁명이란 과감한 단어를 내놓기도 했다.
언제나 유연하고, 진보적이며, 열려있는, 그럼으로써 빠르게 변화하는 분야가 한국영화계라고 자부하는 사람으로서, 새해 새아침, 이 시대적 변화 속의 중심에 서 있을 수 있는, 한국영화계의 긍정적 성장에 순기능하는 한 영화인으로 생존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심재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