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한국 기업들은 대주주와 소액주주를 나눠 생각하는 잘못된 관행에 빠져 있었다. 대주주는 회사의 주인, 소액주주는 간섭이나 하는 귀찮은 대상으로 여기는 기업이 있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이 같은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기업은 투자자에게 이익을 돌려주기 위해 만들어진 조직’이며 ‘경영자는 주주 이익을 위한 일꾼’이라는 평범한 원리를 깨닫는 기업이 늘고 있다.
전문가들은 ‘주주 중시 경영’이야말로 기업과 주주 모두를 위한 윈윈(Win-Win) 게임의 방법이며 신뢰경영과 투명경영의 핵심이라고 설명한다.
▽불투명 경영의 뿌리〓동부증권 장영수 기업분석팀장은 “주주를 무시하는 기업의 태도가 불투명 경영의 뿌리”라고 지적한다.
기업 이익을 ‘전체 주주의 것’이 아니라 ‘대주주의 것’이나 ‘경영진의 것’으로 생각하는 회사가 적지 않았다는 것. 주주들이 배당을 하라고 요구하면 “왜 ‘내 돈’을 소액주주한테 나눠줘야 하느냐”고 생각하기 일쑤였다. 대주주가 회계 장부를 조작해 비자금을 빼돌린 것도 “내 돈 내 마음대로 하는데 무슨 상관이냐”는 인식이 바탕에 깔려 있었던 것.
계열사간 무리한 지급보증, 분식회계와 주가조작, 최대주주의 이익을 위한 계열사 주식거래 등도 모두 ‘기업의 주인은 주주’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지적.
▽주주 중시 경영의 힘〓‘31년 연속 흑자, 31년 연속 배당’의 기록을 가지고 있는 신영증권은 오랫동안 쌓아온 소액주주와 경영진 사이의 신뢰를 바탕으로 위기를 극복한 기업. 매년 400억원의 이익을 내던 신영증권은 지난해 상반기(3월 결산법인·2002년 4∼9월) 고작 14억원의 순이익을 내는 데 그쳤다.
그러나 신영증권은 주주들의 신뢰를 바탕으로 흔들리지 않았다. 웬만한 기업 같으면 경영진을 문책할 상황이었지만 경영은 안정됐고 결국 신영증권은 위기를 극복, 지난해 11월 146억원의 누적순이익을 내며 재기에 성공했다.
거꾸로 새롬기술은 주주에게 신뢰를 잃은 탓에 경영권을 잃은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새롬기술의 전(前) 사장이었던 오상수씨는 2001년 자회사인 다이얼패드가 파산 직전에 몰렸을 때 오씨 가족이 미리 다이얼패드 주식을 팔아치우는 등 주주를 무시하는 행동을 했다. 이것이 결국 부메랑이 돼 돌아왔다. 회사는 경영권 분쟁에 휩싸였고 결국 오씨는 구속되기에 이르렀다.
▽주주 중시 경영은 윈윈 게임〓주주 중시 경영으로 기업이 얻을 수 있는 것은 ‘주주의 신뢰’다. 과거처럼 소액주주의 힘이 크지 않았던 때라면 기업이 굳이 주주의 신뢰를 얻을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바뀌었다. 주주가 기업을 믿지 않으면 기업의 주인이 언제든지 바뀔 수 있는 시대가 됐다. 주주의 신뢰 없이는 경영진이 장기적인 경영 계획을 갖고 기업을 꾸릴 수가 없다.
가치P&C 박정구 사장은 “주주 중시 경영은 기업에 대한 주주의 믿음을 크게 만들며 이 믿음은 기업의 장기적인 성장에 밑거름이 된다”고 말했다.
이완배기자 roryrer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