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환 추기경을 비롯한 한국 천주교 15개교구장들과 보좌주교 등이 96년 바티칸의 교황청을 방문해 교황을 알현하고 있다 . /동아일보 자료사진
천주교 김수환(金壽煥) 추기경이 동아일보와 가진 2003년 신년 대담(1월 1일자 A8면 보도)에서 “한국에서 하루빨리 또 한 분의 추기경이 나와야 한다”는 소망을 피력해 ‘제2의 추기경’ 탄생에 관한 기대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김 추기경은 작가 최인호씨와 가진 대담에서 “지난해 5월 만 80세가 넘어 교황에 대한 선거권이 없고 피선거권도 사실상 없어졌다”며 “공식 업무에서 은퇴한 추기경 대신 실무를 맡을 추기경이 한국 천주교회에 절실히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추기경은 “이같은 뜻을 교황청과 주한 교황 대사관 등 여러 경로를 통해 전달했다”고 덧붙였다.
김 추기경의 소망처럼 최근 교회 안팎에서는 ‘제2의 추기경’을 바라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김 추기경은 주교직에서도 이미 은퇴해 국내에서 어떤 공식적 임무도 맡고 있지 않다. 교회 내부에선 대교구를 맡고 주교회의에 참여하는 등의 실질적인 활동을 할 수 있는 추기경이 나와야 교계 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추기경은 교황 다음의 고위 성직자로 교황을 보좌하고 중요 문제에 대해 조언하는 역할을 한다. 추기경은 교황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갖는 데 비해 주교는 그 같은 권한이 없다.
건강이 안 좋은 요한 바오로 2세의 후임이 공공연히 논의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의 추기경이 교황 선출 투표권을 갖지 못한 것은 450만명의 신도를 갖고 있는 한국 천주교의 위상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현재 한국 천주교 신자는 아시아에서 필리핀(6500만명) 인도(1600만명) 인도네시아(600만명) 베트남(530만명)에 이어 5번째. 인구 대비 신자수는 필리핀에 이어 두 번째다. 필리핀은 2명, 나머지 국가는 각 1명의 추기경이 있다. 미국(6300만명)은 추기경이 6명이나 된다.
물론 신자수에 비례해 추기경 수가 정해지는 건 아니다. 천주교 관계자는 “최근 교황청이 신자수와 상관없이 각 국가의 대표성을 부여하는 차원에서 추기경을 선발하고 있는 추이를 감안할 때 신자 수는 하나의 고려대상일 뿐 절대적인 기준은 아니다”고 말했다.
교계에서는 교황청이 ‘제2의 추기경’ 선발에 관해 한국 천주교의 특수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우선 김 추기경이 69년 한국 최초로 추기경에 오를 당시 100만명 미만이었던 신자수가 지금은 거의 450만명에 육박할 정도로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는 점. 세계적으로 신자 수가 정체 현상을 보이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한국 천주교의 ‘기여와 공헌’을 평가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들어 아시아 및 세계 교회의 새로운 중심지로 떠오르고 있는 한국 천주교에 대한 교황청의 ‘배려’가 필요하다는 견해도 있다.
후임 추기경으로 거론할 수 있는 후보는 교회법 전문가로 서울대교구장인 정진석 대주교와 장면 전 총리의 아들로 교황의 총애를 받고 있는 춘천교구장 장익 주교, 이효상 전 국회의장의 아들인 대구대교구장 이문희 대주교, 기획 및 행정능력을 평가받고 있는 광주대교구장 최창무 대주교 등을 꼽을 수 있다. 하지만 김수환 추기경이 47세에 마산교구장에서 일약 서울대교구장으로 발탁돼 추기경으로 승품한 것처럼 ‘의외의 인물’이 낙점될 가능성도 있다.
서정보기자 suhcho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