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디지털 시대다. 한 조사를 보니까 연말연시에 평소의 4배가 넘는 메일이 폭주했다고 한다. 기자도 올 겨울에는 많은 이로부터 연하장 대신 인터넷과 휴대폰 메일로 새해 인사를 받았다.
하지만 웬지 메일은 기계의 금속성 만큼 차갑게 느껴지는 게 사실. 386세대인 기자지만 메일을 보낸 쪽에 일일이 전화라도 걸어 답례한 것은 이 때문이다.
전화 버튼을 누르는 기자의 손가락이 뻣뻣해지기 시작할 즈음에 실로 반가운 아날로그식 새해 인사 2통을 받았다.
첫 번째는 삼성 김응룡 감독의 연하장. 우표를 붙인 겉봉에는 그의 사인이 있었고 더욱 놀라운 것은 한 해동안 보내준 성원에 감사한다는 내용의 글이 인쇄가 아닌 필기체로 쓰여 있었다는 점이다.
김감독쯤 되는 명사라면 최소한 수백통의 연하장을 보냈을 것인데 환갑을 넘긴 ‘노인네’가 언제 그걸 다 썼다는 말인가. 의문은 곧 풀렸다. 예상했던 대로 김감독이 직접 쓴 것이 아니라 김정수 매니저의 노동력이 더해진 것. 어찌 됐든 연하장을 보낸 것은 오로지 김감독의 의지였음이 분명하니 고마울 따름이었다.
또 하나의 감동은 김성근 전 LG감독의 전화였다. 이젠 웬만한 팬들도 알겠지만 정신 놓고 있다가 그의 전화를 받으면 누가 걸었는지 알아차리는 데만도 시간이 제법 걸리는 게 사실. 수화기 저편에서 “킴성건이야”를 몇 번씩 반복하게 만든 뒤에야 인사를 하면서 미안한 생각이 앞섰다. 지난달 팬과 제자들이 열어준 회갑연때 “한동안 야구를 잊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는 그의 말이 불현듯 떠오른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의 말투는 어느 때보다 밝았다. 그는 “감독을 그만 두면 집에만 틀어박혀 있을 줄 알았는데 요즘은 오히려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정도”라고 했다. 연말연시를 일본에서 보냈다는 그는 3일 성균관대를 시작으로 6일부터는 열흘간 태국 방콕에서 청원고 선수단의 전지훈련을 봐준 뒤 귀국해서는 곧바로 지방으로 내려간다고 했다. 경주초등학교에 들렀다가 목포로 가서 영흥고와 인천고를 지도하고 다시 전주로 올라와 올해 창단하는 한일장신대학을 둘러볼 계획이라는 얘기다.
비록 전화 음성이었지만 김감독의 야구에 대한 집념과 사랑을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아무리 디지털이 편리하다고는 해도 아날로그의 따스함만은 이길 수 없다는 생각이 든 연말연시였다.
장환수기자 zangpab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