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랴오닝(遼寧)성 안산(鞍山)대 경제학과 교수를 지낸 김일경(金一慶·68·사진)씨는 경북 청도에서 태어나 네살 때인 1938년 가족을 따라 만저우로 건너간 교포 1세다. 2년 전쯤 정부에 국적 취득 신청을 낸 김씨는 이달 중 한국 국적이 나온다는 통보를 받았다. 그는 “중국에서 대학교수로 나름대로 성공했지만 고향을 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김씨는 경제학자지만 20년 넘게 고구려 산성(山城)을 연구해 온 재야 사학자이기도 하다. 고구려 산성은 상당수가 만저우에 위치하고 있는 데다 외국인에게는 개방하지 않는 곳이 많아 한국 학자들이 연구하기에는 제약이 있었다. ‘중국 국적’의 그가 일일이 답사해 정리해둔 130여개 고구려 시대 산성 자료가 가치를 갖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가 고구려 산성 연구에 관심을 가진 것은 70년대 말 ‘안산시 조선족지(신문)’의 주필을 맡으면서부터.
“기사화할 사료를 정리하다 중국이 고구려의 역사를 ‘소수민족의 역사’로 자기네 역사에 편입하거나 소홀히 다룬다는 점을 알았습니다. 그때부터 고구려 산성을 찾아다니며 연구하기 시작했죠.”
월급을 대부분 털어 넣으며 만저우 지역 고구려 산성을 답사해온 그의 활동은 92년, 당시 옌볜(延邊)대 객원교수로 있던 이화여대 신형식 교수(사학과)를 통해 한국 학계에도 알려졌다. 이후 그는 한국 학자들이 중국의 고구려 산성을 답사할 때 ‘단골 가이드’가 됐다.
김씨는 조선족 신문 등에 관련 논문을 발표하며 학술 활동을 해왔으나, 활발한 저술 활동은 하지 못했다. ‘소수 민족사’ 연구를 바라지 않는 중국 당국이 부담스러웠던 탓.
“요즘은 편한 마음으로 고구려의 성곽과 도로에 대한 개괄서를 집필하고 있습니다. 천리장성, 평원성 등에 대해 기존 한국 학계와는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는데 이 점을 집중적으로 거론할 것입니다.”
김씨는 “중국에는 방치된 고구려 유적이 많다”며 “정부 차원에서 중국과 협상해 유적 보존을 서둘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주성원기자 swon@donga.com